이미 사랑하니까,
은혜는 우리한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감사합니다.. 주님..” 밖에는 없다.
믿음의 표현으로 감사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고, 행함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 누군가 “선교를 가야만해! 기도를 하루에 몇 분 해야만해!”하면서 누군가에게 정죄한다면 이미 그 말속에는 사랑이 없기에 주님이 가르치신 뜻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지키며 오히려 사람들을 얕보는 행위가 완전히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이유, 선교를 결단하는 이유,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유, 십일조하는 이유 모두 무슨 이유에서? 오직 단 하나 “사랑”이다. 만약, 위 행동들을 통해 나 자신의 유익과 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행한 것이라면, 안타깝지만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자유의지대로 사는 사람이기에 사랑의 시작이 나의 유익을 행함으로 행동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것마저 선함으로 이끄시고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니, 율법에 매여서 “이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단언하기 전에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그냥 행하는 것도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정말 정말 작고작은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도 산을 옮길 수있다고. 그 뜻은 겨자씨만큼의 작은 크기로도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너무 놀라운 사실이다. 나는 평소에 믿음이강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바로 그 순간에는 주춤한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아마 겨자씨 만하게 믿음이 작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믿음으로 무작정 행동했을 때 결과는 놀라웠다.
세상에서는 믿음을 각종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탑 다운’ ‘이미지 트레이닝’ ‘상상 운동’ 모두 미래에 대한 믿음을 내포한 생각 운동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작아도 좋으니 겨자씨 만하게 주님을 믿음으로 살아가자.
그럼 모든 일은 문제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