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덫

by 끄적쟁이

타는 듯한 폭염이 한반도를 삼키고 있었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밤이 되어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끈끈한 습기와 뒤엉켜,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숨 막히는 여름. 그리고 이 끈적이는 계절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끊이지 않는 의문의 실종 사건들이었다. 벌써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평범한 이들의 얼굴에는 불신과 공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강민성 형사는 그 속에서 가장 지쳐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마흔둘, 175cm의 다부진 체구는 마치 잘 벼려진 칼날 같았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겉모습과는 다른 깊은 상흔으로 곪아 있었다. 날카롭게 빛나던 눈빛은 피로와 고뇌로 얼룩져 있었다. 몇 년 전,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병도 사고도 아니었다. 어떤 의사도, 어떤 형사도 이해할 수 없는 ‘귀신 빙의’ 현상. 그의 눈앞에서 아내의 몸이 뒤틀리고,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필사적으로 아내를 붙잡으려 했지만, 단단한 그의 팔뚝을 뚫고 아내의 손은 차가운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질린 아내의 시선은 절규했지만, 그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강인했던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끌려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무기력한 남편이었다. 그 날의 좌절과 죄책감은 심장에 박힌 칼날처럼 매일 밤 그를 찢어발겼다.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의 모든 숨구멍을 막아버렸다.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실종자들의 공통점은 놀랍도록 기이했다. 모두 새벽, 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들은 CCTV 감시망을 교묘하게 벗어나, 미로처럼 얽힌 도시의 골목을 지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 안팎 어디에도 몸싸움의 흔적도, 강제적인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흩어진 신발, 테이블 위 팽개쳐진 스마트폰만이 남겨졌을 뿐. 강형사는 먼지 쌓인 텅 빈 집에서 단서를 찾아 헤맸다. 죽은 공간을 맴도는 공허한 바람 소리.


그러다 그는 문득, 미세하지만 놓칠 수 없는 어떤 냄새를 감지했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하고도 역한 향기. 그것은 묘한 기시감과 함께 뼛속까지 시린 불쾌함을 동반했다. 익숙하다 못해 혐오스러웠던 그 향. 마치 썩어가는 시체 위로 뿌려진 장미 향수처럼 이질적이고 끈적였다. 이따금 희미하게 그의 후각을 자극하며 스쳐 지나가던, 그 지독하고 섬뜩했던 향. 그의 아내가 빙의 상태에 있을 때마다 집 안에 가득했던, 그 악몽 같았던 기억의 촉수였다. 아내의 목에서 흘러나오던 알 수 없는 말들과 함께 그의 오감을 꿰뚫었던, 그 불길한 향. 강형사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 하고 떨어졌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 지옥 같은 불길한 감각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성의 세계에 발붙인 형사가 이딴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터였다.


탐문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공통점은, 실종자들이 모두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한 우울감을 넘어선, 삶에 대한 의지 자체가 바닥난 듯한 심연의 어둠. 그들은 마치 살아있으나 죽은 자처럼, 텅 빈 눈으로 어딘가를 하염없이 응시하곤 했다고 가족들은 증언했다. 강형사는 홀로 다시 CCTV 영상을 돌려보았다. 수십 번을 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미스터리한 움직임. 한 실종자의 집을 나서는 순간을 확대하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어두운 새벽, 집을 나서는 그의 두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위태로운 걸음걸이였지만, 동시에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목적지에 향하는 듯한 확신에 찬 발걸음이었다. 그들은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걸어 나갔다. 눈을 감은 채, 미지의 존재가 속삭이는 부름에 응답하듯.


실종의 공포는 비단 사라진 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남겨진 가족들 또한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실종 시간대와 정확히 일치하는 새벽,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극심한 가위눌림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 가위눌림의 끔찍한 절정은 모두가 동일한 악몽을 꾸었다는 데 있었다.


꿈은 언제나 한밤중, 모든 소리가 먹힌 듯한 심연의 정적 속에서 시작되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밖으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눈꺼풀은 천장을 붙잡듯 굳게 닫혔고,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지는 마비감. 차갑게 식어가는 팔다리, 공기 중으로 흩어져가는 의식. 이불의 거친 섬유가 피부에 닿는 감촉 하나하나가 섬뜩한 경계가 되었다.


희끄무레한 안개 속, 마치 낡은 흑백 사진처럼 윤곽만 흐릿한 공간. 그곳을 헤매는 가족들 앞에 낡고 해진 듯한 검은 한복을 입은 형체가 나타났다. 그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응축되더니, 곧 얼굴 없는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여인의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은 마치 먹물로 덧칠한 듯 까만 심연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어둠은 존재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듯했다. 머리칼은 썩은 지푸라기처럼 뻣뻣하게 늘어져 어깨 위로 널브러져 있었고, 손은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공포는 심장 깊숙이 박히듯 파고들며 모든 의식을 마비시켰다.


마침내, 여인은 마비된 가족들의 얼굴에 그림자처럼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한기가 후두부를 강타하고, 비릿한 흙냄새와 죽음의 냄새가 섞인 듯한 악취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치 귓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쉰 듯 갈라진, 쇠가 긁히는 듯한 섬뜩한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다... 계-획한- 대로... 피-료-한 제물-이었으니... 흐-흐-흐... 그리-고 너-희들-이... 버-리지 않았-더냐-..."


그 목소리는 한숨처럼 시작하여, 끝음마다 숨 넘어가는 듯한 기괴한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고통받는 이의 비명 같기도, 죽어가는 영혼의 비웃음 같기도 했다. ‘버리지 않았더냐’는 말은 가족들의 마음 깊숙이 박힌 죄책감을 맹렬히 겨냥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소중한 이를 곁에 두고도, 그 고통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혹여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홀로 남겨두었던 건 아닌지. 삶을 놓아버리려는 사람의 위태로운 영혼을 무심하게 방치한 건 아닌지, 스스로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강민성 형사는 이 끔찍한 증언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아내가 겪었던 극심한 우울증을 떠올렸다. 그리고 형사라는 명분 아래, 현장에 매달려 아내의 병든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충분히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가 끔찍하게 겹쳐졌다. ‘버렸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쑤셔댔다. 피해 가족들의 죄책감에 공감하는 동시에, 이 악마 같은 존재에 대한 뼛속 깊은 분노가 맹렬히 타올랐다. 이번만큼은, 그 무력함 속에 갇히지 않겠다고. 그는 분노로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우울증이라는 단서에 모든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많은 실종자들이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면, 분명 공통된 치료 기관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름 끼치는 진실이 밝혀졌다. 실종된 스무 명의 환자가 모두 동일한 정신과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강민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지친 그의 얼굴에 일말의 희망, 그리고 비장한 각오가 스쳤다.


오래된 건물 숲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개인 병원. '평온 정신과 의원'. 간판의 페인트는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고, 유리창은 희뿌연 먼지로 덮여 안이 보이지 않았다. 낮에도 음침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물은 마치 고독한 섬 같았다. 강민성은 차가운 얼굴로 삐걱이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낡은 나무 냄새가 뒤섞인 실내. 환자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한 무거운 정적만이 그를 압박했다. 바닥에 쌓인 먼지 위로 그의 구둣발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졌다.


원장의 진료실 문을 열자, 벽면에 기이한 추상화가 걸려 있는 방에서 백발의 노의사가 느릿하게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백발의 머리칼은 엉성하게 빗겨져 있었고, 핏기 없는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늙고 지쳐 보였지만, 그의 퀭한 눈빛만은 형형했다. 강민성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노의사를 응시했다.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노의사는 강민성을 올려다보더니,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늙은 얼굴에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고, 기이하게 뒤틀린 입꼬리는 흡사 금이 간 인형의 그것 같았다.


그 순간, 노의사의 몸에서 무언가 튀어 오르는 듯한 기괴한 경련이 일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했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그의 늙은 육체는 마치 실을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흔들렸다. 흐릿했던 눈빛은 한순간 이글거리는 검은 광기로 가득 찼고, 입술은 시커멓게 변색되어 피가 흐르는 듯한 불길한 형상을 띠었다. 목소리는 낮고 쉰 듯 갈라졌지만, 동시에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이질감을 담고 있었다. 강민성의 귓가에 끔찍하도록 선명하게 박혀 있는, 그의 영혼을 꿰뚫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오랜만일세... 흐-흐-흐... 그래서, 자네가 무얼 할 수 있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강민성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피가 차갑게 식는 감각,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 아내의 몸을 빼앗았던 바로 그 귀신! 몇 년간 그를 괴롭혔던 무력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그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등 뒤의 벽에 부딪히자 숨이 막혔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그의 강인한 두 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르르 떨렸다. 무릎부터 시작된 힘 빠짐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눈앞의 존재는 비웃듯이 조롱하고 있었다. 형사로서의 이성이 고통스럽게 그를 채찍질했다. ‘정신 차려, 강민성! 여기서 무너지면 아내도, 실종자들도 구할 수 없어!’ 그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숨을 골랐다.


억지로 부여잡은 이성으로 물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꺾이지 않았다. "실종자들은... 실종자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원장의 몸에 빙의된 귀신은 고통스러워하는 강민성을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그 시커먼 눈동자는 희열로 번득였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늙은 얼굴을 기괴하게 뒤틀리게 하며, 그 시커먼 입술을 더욱 활짝 벌렸다. 그리고 이 모든 악몽을 총괄하는 듯한 오만한 선언이 강민성의 귓가를 찢었다.


"다... 이루었노라..."


그 말을 끝으로, 노인 원장의 몸에서 귀신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마치 연기가 사라지듯. 의사는 혼절하듯 쿵, 소리를 내며 책상에 쓰러졌다. 진료실에는 다시 곰팡이 냄새와 약품 냄새, 그리고 강민성의 거친 숨소리만이 남았다. 이성을 잃고 몸부림치다 겨우 벽에 몸을 기댄 채 그는 흐릿한 눈으로 쓰러진 의사와 텅 빈 공간을 번갈아 응시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강민성의 머릿속에 '다 이루었노라'는 마지막 속삭임이 맴돌았다. 그는 맹렬하게 병원을 수색했다. 지하실로 향하는 낡은 문, 그리고 그 끝에 이어진 차가운 복도. 그는 문득, 아내의 몸에서 느껴졌던 것과 똑같은 끈적하고 역한 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발견했다. 낡은 창고, 그리고 그 안에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냉동고가 있었다. 쇠로 된 묵직한 문을 열자, 강민성을 비롯한 뒤따라온 모든 수사팀을 경악케 할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실종되었던 사람들의 차가운 시체들이 그곳에 있었다. 스무 구 가까운 시신들이, 모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어떤 시신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어떤 시신은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그들을 마주한 강민성의 눈빛은 이젠 절규마저 넘어선, 무언가 깊은 증오로 이글거렸다.

원장은 체포되었다.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시체들의 존재는 명백한 증거였다. 모든 언론은 '정신과 의사가 저지른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사회는 들끓었지만, '범인'이 잡힌 것에 안도하는 듯했다. 그러나 강민성의 마음속은 그 어떤 분노나 안도감보다도 더욱 깊은 고통과 자괴감으로 짓눌려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의사는 단순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진짜 범인,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갔던 그 악마 같은 존재가 다시 사람들을 농락하고, 제물을 바치게 한 후, 유유히 그의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강민성은 서늘한 여름밤, 한기가 가득 찬 병원 복도를 홀로 걸었다. 거리는 '범인'을 잡았다고 환호했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공포만이 아른거렸다. 그는 분노했다. 형사로서, 남편으로서, 무엇 하나 지켜내지 못한 자신에게. 그리고 잡지 못한 그 존재에게. '다 이루었노라'는 그 마지막 속삭임은 강민성의 뇌리에 찢어지는 비명처럼 사무쳤다. 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뿐이었다. 끝없이 반복될 죄책감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악마적 존재와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의 고독한 복수가, 이 끝나지 않는 악몽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을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