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난독증과) 자폐증이 있지만 아무도 그걸 몰라요
신경다양성
코미디언들 중에 Jerry Seinfeld(제리 사인펠드)는 자신에게서 자폐의 특성을 좀 발견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은유적으로 하는 말이나 몸짓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걸 자신의 코미디 스타일로 만들었지만, 실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힘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그를 놓고 자폐증이 있는 자녀를 둔 엄청나게 많은 부모들이 항의를 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당신은 진짜 자폐가 뭔지 모른다!!'라고 하면서.
제리는 자폐가 있을까? 제리와 같은 자폐의 정도는 자신이 설명을 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제리도 자신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특히나 나이가 들면서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서 언제 웃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의 눈을 어떤 강도로 바라보면 되는지 등등을 아주 잘 학습하여 표시가 거의 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과는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데 특히 여성들은 그 가면을 너무 잘 써서 전혀 가면 뒤의 다른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에서 온 노라는 한국어가 아주 유창하다. 한국의 스카이 대학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곧 영국의 옥스퍼드에 가서 석사를 할 예정이다. 이런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똑똑한 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가면 뒤 숨은 얼굴이 살짝살짝 비칠 때가 있다.
노라는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므로 일정 시간마다 반드시 일어나서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던지 산책을 갔다 온다던지 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스마트폰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카톡이 되지 않는 폴더폰을 쓴다. 너무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게라도 산만하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려 한다. 음악도 핸드폰이 아닌 MP3플레이어로 듣는다. 자신이 기억해야 하는 일을 종종 까먹어 곤란하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귀를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노라의 꿈은 아주 한적한 시골에서 사는 거라고 한다...
이 정도만 들어도 그녀에게는 ADHD와 자폐증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노라가 어릴 때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가 않았는데 그냥 자신이 공부를 못하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ADHD약을 복용하고 나서는 성적이 수직으로 상승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은 치료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자폐적 특징은 알고 보면 보일 정도로는 있고, ADHD도 자신이 규칙적으로 잘 관리를 하는 것 같다.
우리 주위에 이런 성인은 정말 정말 너무 많다. 이들 중 어린 시절 (혹은 성인이 된 지금도) 한글이나 영어 읽기를 떼는 게 힘들었거나, 글은 읽지만 읽는 즉시 머릿속에서 내용이 사라졌거나 (이런 사람들 은근히 많다!!), 오른쪽과 왼쪽이 항상 헷갈렸거나, 맞춤법/스펠링을 유난히 자주 틀렸거나, 뒤집어진 글자나 스펠링이 마구 섞인 글자도 잘 읽었거나, b와 d가 많이 헷갈렸거나, 다른 과목들에 비해 산수를 유독 힘들어했거나, 심각한 길치였다면 아마도 난독증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난독증은 자주 자폐증이나 ADHD등과 같이 발현되니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지금 시대에는 정말 다양한 두뇌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두뇌가 다른 두뇌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느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일까. 유화제와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너무 맛있고 모양도 예쁜 일본식 케이크와 100% 호밀로 만든 투박하고 맛도 단순한 빵 중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매 끼니 먹으려면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우리 두뇌도 우리 세상에는 다양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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