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하는 그대로 이해한다

by 코리아코알라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한 번은 내가 하루종일 외출할 일이 있어서 커리(한국 카레 아니고 인도식 커리)를 아주 크~은 냄비에 해 놓고 나갔다. 밥은 밥솥에, 커리는 며칠은 먹을 만큼 충분하니 배고플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보니 커리가 거의 8~90프로 정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당연히 많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왜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ㅠ) 나는 집에 와서 그걸 저녁으로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헐!!! 이걸 이렇게나 많이 먹었단 말이야?? 한 끼에??"

"응, 너무 맛있어서. 아, 배가 터질 거 같다."

"난 이거면 적어도 3~4끼는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나는 저녁을 다른 걸로 먹고, 남은 커리를 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다음 날 다시 뜻하지 않게 외출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제 남은 커리와 밥을 먹으면 되니 점심 걱정 말고 외출하라고 했다. 그 말을 별생각 없이 듣고 나는 외출했다. 그런데 저녁에 돌아와 보니 남편의 얼굴이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점심은 먹었나?) 냉장고 문을 열고 남편이 점심으로 먹겠다고 했던 커리를 보니 아침에 봤던 양과 거의 비슷했다.


"점심은 커리 먹었어?"

"응"


다시 냉장고 속 커리를 보니 아침보다는 약간 줄어든 것 같았다.


"별로 남아있지도 않았는데 왜 다 안 먹었어? 양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응, 그게 적어도 세 끼는 가야 한다 해서."

"?????"


(점심을 만족스럽게 먹지 못해서 그렇게 얼굴이 해피하지 않았던 거였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했다. 그의 얼굴은 그다음 날 만족스런 아침을 먹은 후에야 다시 밝아졌다)


저녁 10시가 넘었는데 남편이 안방에서 TV를 꽤 시끄럽게 보고 있다.


"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옆집에 시끄럽지 않을까?"


남편은 바로 TV를 껐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 너무 조용해져서)


"어? TV 안 봐?"

"시끄럽다면서?"

"그럼 소리를 줄이고 보면 되잖아?"

"......"



남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남편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같이 느껴보려고 노력해서인지 나도 요즘은 내 성향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 어차피 이 세상에 자"폐"(自閉)적인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자"개"(自開)적인 사람도 있는 법이고,

서로가 함께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자폐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스 # ASD #카산드라 증후군



keyword
이전 06화(입에 착 감기는) 단어나 문장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