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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Jun 17. 2024

엄마, 하나님은 있어?

뜻밖의 엄마의 대답

그때 나는 대안학교를 다니며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실습을 나가야 하는 때가 와서 영등포까지 다니며 공부했다. 거기서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여자가 있었는데 나보다 무려 4살이나 많은 여자였고 같은 조였다. 


 같은 조를 하면서 그녀와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 날 내가 먼저 고백을 해서 같이 사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무당의 아들이었던 내게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무려 뱃속에서부터 크리스천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여인, 그 여인이 바로 그러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녀가 내 고백을 받아 준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바로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호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그녀와 사귀다가 나 역시 숨길 이유가 없어서 내 어머니는 무당이라고 밝혔고, 그녀 역시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마는 속으로는 언젠가는 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오피스텔에 혼자 살면서 대략 2주에 한 번씩은 중화동으로 왔다 갔다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날 불러 앉혀 놓고 웃으면서 날 떠보듯 말했다.


" 너... 빠졌지?? ”


 엄마의 그 단 한마디에 나는 아주 잠깐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 한마디가 무얼 의미하여 물어보는 말인지 알았기 때문이고, 나 역시 한참이나 예배가 좋다고 느껴지고 있는 중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엄마에게 무언가 잘못된 것을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애써서 안 그런 척하고 말했다.


" 뭐가? ”

" 너... 교회에 빠졌다고. 동자가 그러던데? ”

" 아... 아냐. 무슨. 빠지긴 누가 빠져. 틀렸어. ”


 나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2주 후, 나는 문득 하나님은 정말 있는 신인가? 하고 궁금해졌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했던 그 요상한 방언기도라는 것이 정말 자기가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나오는 소리라면, 무속인의 관점에서 평가했을 때에는 그 현상은 바로 빙의 현상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신가물(신의 기운)이 있는데, 그 정도의 차이에 의해서 신내림을 받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이랬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빙의 현상, 즉 귀신에 의해서 자기도 모르게 주저리 주저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상 무당의 아들로서 그런 것을 확신을 했다. 그래서 또다시 2주가 지나고 중화동에 갔을 때 엄마에게 물어봤다.


" 엄마, 정말 하나님은 있어? ”

 그러자 엄마는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말했다.

" 응. 있지. ”

" 저... 정말?? ”

" 그래. 있어. 내가 무당으로 봤을 때에는 있어. ”


 무당인 엄마의 입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난 사실 엄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엄마가 그 이후로 뒤이어하는 말이 더욱 충격이었다.


" 혹시나 다닐 거면, 천주교로 가라. 천주교는 괜찮아. 다녀도. ”

" 엥? 천주교? 왜? ”

" 천주교는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해 주거든. ”


 그렇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는 개신교는 절대로 한국의 제사 문화를 인정해주지 않지만, 천주교는 제사 문화를 우상숭배로 생각하지 않고 인정해 준다는 것에 있었다.


 예전에 엄마의 입에서 들은 말로는 엄마도 한 때에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건 바로 우리 친할머니 때문이었는데, 예전에 할머니가 신병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정도가 많이 심해서 한 번은 팬티바람으로 온 동네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을 만큼 말이다. 그러던 도중에 할머니가 그러한 자신의 신병을 고치기 위해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더불어 며느리였던 엄마도 같이 교회에 나갔다는 것이다. 그때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각기 신자의 집에서 예배를 보는 구역예배라는 것도 해보고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무당이다. 그것도 무당 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5대 무당 중 하나라고 자부할 만큼 큰 만신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입에서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그 의도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주교는 괜찮다니? 천주교는 다녀도 된다니? 내가 알기론 천주교나 개신교나 둘 다 똑같이 주님을 찾으며 예수님을 찾는 종교이고 무당인 엄마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엄마는 나와 대활 하면, 참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댔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나 아니면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 스~~~ 읍!! 내가 올해만 잘 넘어가면 장수할 텐데 말이야. ”

" 그게 무슨 말이야? ”

" 엄마가 올해 57살이거든? 엄마 사주에 57살만 잘~넘기면 오래 살 거든. ”


 기가 막혔다. 아주 옛날이었으면 몰라도 요즘 57살이면 아주 젊은 사람에 속하는데 그 나이에 벌써 저런 소리를 한다니 말이다.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 아휴 됐어요! 죽는 것도 아무나 죽나? 그나저나 올겨울에는 꼭 나랑 일본에 온천여행 가는 거야! 미리 말했어! 바쁘다는 핑계는 이제 안 통해요! ”


 엄마는 사실 몇 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엄마는 폐경이 일찍 온 편이라고 했는데 그 망할 놈의 갱년기 증상 때문에 몇 년째 수면제의 도움 없이는 잠을 못 이룰 만큼 심했고, 나는 그런 엄마의 갱년기에, 우울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게다가 새아버지와 같이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새아버지와 사이가 많이 안 좋은 것이다. 무당과 악사의 관계이다 보니 서로의 영역에는 터치를 하지 않는데, 부부간에 신경을 안 써도 너무 안 쓰는 사이가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저 10년 가까이 됐으니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으로 살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최근에는 엄마와 새아버지가 자주 싸워댔는데, 그렇게 싸우는 이유가 바로 새아버지가 바람이 났다는 엄마의 근거 없는 추측 때문이었다. 내가 봤을 때는 새아버지는 엄마보다 7살이나 많은데 그 나이에 무슨 바람이겠나? 싶었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 잠자리를 갖더라도 무척이나 힘이 들 나이라고 생각되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아버지 편을 들어 오히려 엄마를 야단쳤다.


" 아휴!! 그만 좀 하라니까! 엄마! 바람은 무슨 바람이야! 그 나이에... 솔직히 서지도 않겠다!! ”


 난 엄마와 이런 대화조차도 서슴없이 하는 사이다. 엄마도 날 베었을 때부터 담배를 피웠지만, 나도 군대를 제대하고 엄마가 황 씨 아저씨와 헤어졌을 때부터 엄마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며 ,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숨기지 않고 인생 상담을 하는 그런 사이였다.


 내가 그렇게 대놓고 말하자, 엄마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의견에 쉽게 수긍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새아버지에게는 잘난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었는데, 아들은 엄마와 나와 매우 가깝게 지내며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는데, 딸들은 엄마를 사람 취급도 안 하는 태도여서, 나도 걔네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아버지의 등골이나 빼먹는 그런 철없는 계집년들이라고 욕을 해댔다.


 엄마의 그 의심병은 더욱 높아져서 별장에 있는 이웃 아줌마에게도 그 화가 미쳤다. 그 이웃 아줌마와 새아버지가 바람이 났다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내가 엄마의 아들이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한 것으로 보여서 나는 연신 새아버지 편을 들며 엄마만을 나무랐다.     


 나의 학교생활은 날이 가면 갈수록 너무 힘이 들었다. 쉬는 날이라고는 토요일, 일요일인데 게다가 토요일에 페어런츠 데이라는 행사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학교에 나가야 했고, 일요일은 주일이라고 학교 교회에 또 나가야 했다. 


 그뿐인가? 월급 127만 원 중에서 기본적으로 주일 헌금이 들어가고, 뱃속에서부터 크리스천이었던 내 새로운 여자친구도 처음 들어본다고 했던 ‘오병이어 헌금'을 내야 했다. 물론 강요는 아니었지만, 사회생활이란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다른 선생님들 다 내는데 나만 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내는 헌금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십일조였다. 십일조는 내가 얻은 수익의 10%를 헌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인데, 월 127만 원이라는 열정페이를 받고서 거기에 10%인 12만 7천 원을 십일조 헌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강요는 하지 않았다. 강요는….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힘든 것은 또 있었다. 매일 아침 우리 반 조례 시간이면 해야 하는 QT였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몰라서 대충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남들이 하는 말을 종이에 적어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수첩에 적어놓고 조례 시간에 보고 읽었다.


 그런데 QT 같은 경우는 인터넷 검색으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성경이란 것이 도대체 옛날에나 쓰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가 대학 시절 때 하지도 않았던 단어 번역을 거기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퇴근을 하면 저녁을 먹을 시간조차 없이 내일 수업 준비에, QT 준비, 그리고 기도문 준비로 바빴다.


" 자기... 나 궁금한 게 있어...”


 그렇게 준비를 하다가 막힐 때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성경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성경에 대해, 예수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자신과 토론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라 했다. 내가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분석하고 기도연습을 하고 그러니까 그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 자기야. 나 말했잖아. 나 여기 대안학교 다니면서 겨우 127만 원 벌어... 그래도 괜찮아? ”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녀는 항상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 그까짓 돈이 뭐가 중요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거야. 다른 것은 주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 ”


 그녀는 교회에 다니면서 주일이 되면 예배가 시작되기 약 30 분 전 정도부터 앞에서 CCM을 부르는 청년부였다. 그리고 매일 같이 저녁에 내가 사는 오피스텔로 와서 내일의 QT를 같이 준비해 주고, 기도를 같이 했다. 


" 나는 꿈이 있었어. ”

" 꿈?? 무슨 꿈? ”

" 난 결혼을 하면 집에서 남편이랑 가정예배를 하는 것이 꿈이야. ”


 정말 그녀는 온종일 주님으로 시작해서 주님으로 끝을 맺는 절실한 신앙인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마냥 좋아서 웃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녀와 결혼하면 그녀와 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종교적인 문제는 어찌어찌해서 넘길 수 있다고 쳐도, 혹시 2세가 태어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아빠는 제사상에 손주로서 절을 하라고 가르치고, 엄마는 크리스천으로서 절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칠 것이 뻔했다. 그런 문제로 날이면 날마다 싸울 것이 뻔했다. 사실, 나는 그녀와 사귀면서 종래에는 그녀와 절대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월 127만 원이라는 열정페이를 받으면서까지 이 대안학교를 끝까지 다니고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바로 학생들. 우리 반 학생들이 이유였다. 사실, 이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눈을 뜨고 보니까 교육청에 인증된 학교도 아니라서, 이 학교에서 아무리 몇 년간 경력을 쌓는다고 하여도 내 이력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력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런데 오로지 아이들, 정말 착한 우리 반 아이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서 지내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고2라는 핑계로, 한 번은 우리 가족의 별장으로 데리고 가서 고기 파티를, 또 한 번은 강원도 속초로 데리고 가는 수학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나는 이 착한 아이들 때문에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날이 가면 갈수록 학교도 이상해지고 교장 선생님은 더더욱 이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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