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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호 Jul 13. 2023

검정 비닐의 지옥

식물은 뿌리가 머리다. 뿌리는 아랫도리가 아니다. 줄기는 부러져도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뿌리가 죽으면 바로 사망이다. 우리가 숨을 못 쉬면 죽듯이 식물도 뿌리로 호흡하지 못하면 질식사한다.


농부들은 잡초를 막기 위해서 땅에 검정 비닐을 씌운다. 검정 비닐을 씌우면 땅 속의 온도는 외부 온도보다 대략 10도(화씨 20도) 높아진다. 밖이 섭씨 30도라면 검정 비닐 안은 섭씨 40도가 되는 셈이다. 더운 여름날 당신이 검정 쓰레기 봉지를 얼굴에 쓰고 다닌다고 상상해 보라.


숨 쉬지 않고 사는 생물은 없다. 작물의 뿌리도 호흡을 해야 다. 잡초가 극성스럽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잡초와 함께 키워도 크게 손해 나지 않는다. 토양생태계는 죽어도 고추 몇 개, 토마토 몇 개 더 따면 즐거울까.


수 십만 평의 땅에서 대량 생산하는 미국의 농부들은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는다. 토양생태계는 개의치 않는다.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밭을 경작하다가 그만두면 사막화가 되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콧구멍만 한 텃밭을 일구는데도 검정비닐을 씌우는가.  


젊어서 친구와 함께 자연농법에 심취하여 고추농사를 지은 일이 있다. 남들은 고추밭에 검정비닐을 씌울 때 우리는 고랑과 이랑을 짚으로 덮었다. 주변의 농부들은 비웃었다. 가을 수확기가 지나자 상황은 돌변했다. 모두 우리 밭으로 몰려와서 청고추를 따갔다. 자기네 밭의 고추는 써서 장 담글 고추가 못됐다는 것이다. 우리 밭의 고추는 달았다.


비닐을 씌우는 것도 일, 가을에 벗겨내는 것도 일이다. 검정비닐은 묻을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땅을 내버려 두라고 권했다. 땅을 갈 필요도 없고, 잡초를 없앨 필요도 없고, 비료를 줄 필요도 없다고 가르쳐줬다. 그러나 농부들은 부지런한답시고 땅을 죽이고 공기를 오염시킨다. 농사가 시작된 지 일 만년이 지났으나 땅을 죽이고 오염시키는 일은 계속된다. 쉽고 편한 길로만 가려는 잘못된 관행은 언제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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