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을 해도 괜찮을까?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연애 01

by 박모씨

때는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은 지 1년을 넘길 즈음이었다. 어쩌다 만나게 된, 어쩌다 대화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알게 된 지 4개월쯤이 지나자, 예감이 왔다. 이 사람이 나를 이성으로 보고 있구나.라는 직감이 나를 찾아왔다. 나를 찾는 그의 연락 속에서, 날 보고 웃는 모습 속에서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거리를 뒀다. 내 질병 때문에 그 사람이 피해를 볼 것만 같았다. 터져 나오는 감정들을 나도 억누르기가 힘든데, 그걸 사서 굳이 옆에서 지켜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가 싫었고, 그가 나를 좋게 생각하는 만큼 나도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사람을 나도 좋아했다기보단, 내 민낯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내가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두 사람에게 물어봤다. 내가 연애를 해도 괜찮을까? 하고 물어봤더니 당연하게도 그 둘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고 했다. 하지만 뭘 하고 싶은지 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당시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세 달 정도 고민했다.

그렇게 세 달이 어영부영 지나가버렸다. 그 와중에도 그를 만나서 웃고, 반가워했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었다. 내심 즐거웠지만,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치료 중인데, 나는 환자인데. 이걸 알면 도망가지 않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숨기기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내가 이런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가 무서웠고, 만약에 알리게 된더라도 내 질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무서웠고,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사람이 떠나갈까 봐 무서웠다.


또 두려웠던 것은 나와 그의 세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내가 혹시나 더 상처 받고 외로워지는 것이었다. 전 애인은 사랑도 듬뿍 받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공부도 잘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잘못한 거긴 하지만, 나는 계속 그와 나를 비교했고, 암담한 결과를 낳았다.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세상 사람들은 나보다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이 점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서 내가 더 불행해지는 이 모순을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은 각자의 우주에서 산다.'는 표현을 즐겨쓰곤한다. 다들 각자의 우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자기 자신이 태양이고 빛이며, 모든 일들이 본인을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각자의 우주 안에서 홀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외로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우주가 만나 서로가 기댈 수 있고 같은 길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사랑을 하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우주는 너무 캄캄했고,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그가 고백을 해왔다. 다음번에 만났을 땐 여자 친구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날 위해서 멀리서 작약 한송이를 사 오고,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다음번엔 여자 친구로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내 가슴 한편이 떨려왔다. ‘나도 기다렸구나, 내가 싫지 않구나..’ 싶어 냉큼 알겠다고 답변을 해버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있어도, 좋은 사람은 만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했다. ‘내 병력을 알려야 할까?’ 하고. 그는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정신과에서 수면장애에 대한 치료를 받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절반은 맞는 말이라서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우울증 환자인걸 알게 된다면,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웃는 내 모습을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당장은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치료 종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었기 때문에 당연히 금방 치료 종료하고, 우울증은 옛날이야기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렇게 나의 조마조마한 비밀을 간직한 연애가 시작됐다. 아직까지 그는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치료를 받는 줄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아침마다 잘 잤느냐고 물어본다. 오늘은 몇 시간 잤는지, 꿈은 많이 꿨는지, 중간에 깨진 않았는지 물어본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날 바라봐 주는 눈빛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연 내가 환자인걸 알고 나서도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줄지 걱정이 된다.


아직도 내 병력을 알릴지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 내려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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