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연애 3
남자 친구랑 사귀기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SNS의 메시지 기능으로 나에게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ㅇㅇ이랑 연락하시는 분 맞죠? ㅇㅇ이 한테 제 연락 좀 받으라고 해주세요.
밤늦게 온 메시지를 이른 아침에서야 발견했는데, 보자마자 잠결에 그냥 남자 친구한테 캡처해서 보냈다. 이런 게 왔다고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출근할 준비를 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여자였다. 어떤 여자가 내 남자 친구를 찾는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이전에 만났었던 여자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문으로 연락이 왔다. 내가 전에 만나던 여자 친구인데 내가 차단을 해뒀다. 그래서 너한테까지 연락이 간 것 같다. 너에게 연락 갈 일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헤어지기 전에 받았던 선물을 돌려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보내주기로 했다고 했다.
아마도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연락을 했겠지. 남자 친구가 모조리 차단을 했다고 했는데, 남자 친구 sns 계정에서 여성 팔로워를 찾아서 굳이 나한테 연락을 한 거였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친구였는데 약이 얼마나 올랐으면 생전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연락을 할까 싶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남자 친구랑 나랑 알고 지낸 지 6개월이 지나고 나서 사귀었는데, 이 여자 친구랑은 언제 헤어진 거지?' 내가 혹시 환승의 상대였다 거나, 바람의 상대였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사람일까 봐 걱정이 됐다.
남자 친구랑 알고 지낸 게 6개월이고, 남자 친구가 본격적으로 마음을 표현한 게 세 달 정도 됐었다. 아마도 그 친구랑 사귀는 도중에 날 알게 됐을 거고, 나랑 연락을 하다가 그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것 같다. 무서워서 아직 확인을 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괜히 실망할 것 같았다. 나도 사람인 지라 내 연인이 혼자 외로운 와중에 나를 만나 오롯이 마음과 사랑을 주고 싶은 상대였기 때문에 만나고자 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전 여자 친구'의 SNS 아이디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SNS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부럽다'는 거였다. 아무리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소셜 네트워크라고 하더라도, 나와는 생활의 결이 다른 게 보였다. 나보다 좋은 직장에서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었는데, 소비의 폭이 달랐다. 유복한 집안에서 잘 자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많이 부러웠다. 쉬는 날마다 고향집에 내려가는 게 즐겁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아서 거짓 말으로라도 그런 말은 못 하겠는데, 좋은 곳에서 잘 자란 사람이구나 싶었다.
자신의 생활에 자신감이 있고, 취미 생활에 돈과 시간을 투자할 줄 알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사람이었다. SNS상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아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다. 보통 사람들보다 나는 의욕도 없고 항상 우울하고 더욱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병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마저 '전여친'과 나를 비교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이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활발하지도 않은데 과연 남자 친구는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이 곪을 대로 곪아있는 사람인데, 이런 외향적인 사람과 만나다가 날 만나면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여친이 올려놓은 MBTI는 ESPT였다. 참고로 나는 INFJ이다. 이렇게 반대가 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사람인데 괜찮을까. 계속해서 그런 생각만 들었다.
솔직하게 남자 친구한테 물어봤다. '나는 이렇게 외향적이지 않은데 괜찮아?' 그랬더니 '너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왜 비교를 하느냐' 고 했다. 그리고는 더 '전여친'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사자가 이야기하기 싫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과연 나는 몇 번째 여자 친구일지,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어땠을지, 상처가 많은 나를 왜 좋아하는지, 내 민낯을 보고도 날 좋아해 줄 건지,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를 만나고 있는 지금 행복한지가 궁금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했다. 그냥 궁금하기만 했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있으니까 괜찮았다.
예전 같았으면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거다.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준다는 게 괜한 손해인 것 같았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컸다. 예쁨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언제부터 날 좋아했는지, 왜 날 좋아하는지, 진짜로 날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지금은 그런 욕심이 다 사그라들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만으로 충분하다고, 누굴 좋아한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 큰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뒀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6개월가량이 지났다. 나는 아직 이 남자가 좋다. 가끔 살아있는 이유가 이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있을 정도다. 사람이 그저 무서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전여친'의 인스타그램에는 아직도 가끔 들어가 본다. 무엇을 샀는지 어디를 갔는지 올려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부럽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 도 없으니까 그렇다. 그래도 마냥 비교 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점들에 대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많이 나아졌구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