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Jul 25. 2021

우울증 환자,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



다리를 다쳐서 수술이 불가피해졌다.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 했고, 총 6주 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다행히도 목발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하셨지만, 2주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수술 전에 병원에 내원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을 받았다. 6주 동안 병원에 내원하기 힘들 거 같다고, 약만 받아가도 괜찮을지 여쭤봤다. 요즘 상태가 안정적이라 약만 받아가시라고 하셔서 우울증 약만 받아왔다.


입원한 내내 수술한 부위는 아팠고, 나는 휠체어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싶었지만, 휠체어는 생각보다 재밌었고, 병원 생활이 아주 지루하고 울적하지도 않았다. 공부도 하고, 뜨개질도 하면서 입원생활을 마쳤다. 퇴원하고 나서도 순조롭게 생활하고 있다. 오며 가며 회사 동료들이 나를 태워주시는 데다 걸어 다니면서도 큰 문제가 없어서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다. 하루에 2만보씩 걸어 다니던 걸 생각하면 몸을 덜 움직이게 됐지만, 그런대로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괜찮은가, 아주 괜찮지는 않다. 우울증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짜증이 났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는 데에서 무서움을 느꼈다. 다치고 나니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고, 한없이 죽음을 바랐던 내가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도 우스웠다. 나 자신이 아주 모순적이게 느껴졌다. 내가 수술을 받는 게 맞는 일인지 긴가민가 했다.


수술을 받고 나서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입원은 처음이었는데 병원에서 푹 쉬면서 치료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병원은 치료를 받기 위한 곳이었지, 사람이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새벽 5시부터 혈당 체크며 혈압 체크를 위해서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아침 7시에 밥을 먹었다. 그 뒤로도 의료진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해서 편하게 쉴 수 있진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환자들의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어서 6인실에 거의 10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일주일 동안 하루에 4시간을 채 자지 못했다. 낯선 환경에서 지내는 게 스트레스였고, 제대로 씻을 수도 없는 상황이 싫었다. 얼른 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퇴원을 하고 나서는 아픈 발을 이끌고 일을 해야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퇴원하고 나서는 발이 계속 아팠다. 의사 선생님도 발을 딛고 다녀도 괜찮다고 하셨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긴 했는데,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내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야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았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매일마다 즐길 여흥 거리가 있고, 매일마다 맛볼 음식이 있고, 매일마다 겪을 계절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병원에 가는 이유는 상담을 받기 위해서다. 나의 병리학적인 동태에 대해서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상담해 주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어줄 제삼자가 생기는 것은 내편이 생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나에게 따끔하게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장장 6주의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듣지 않아도 나 혼자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허우적 대지 않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나를 부정적으로 몰고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은 근무환경과 괜찮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고, 가족들과 떨어진 곳에서 혼자서 지내고 있으며, 내가 아프고 곪아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도 있다. 이런 환경적인 영향 덕분에 괜찮아졌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약물을 중단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갑작스럽게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여 자살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렇게 혼자서도 괜찮은 시기가 오는구나, 싶었다.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감정은 물레방아 같은 거라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도 하는데, 우리는  물레방아 크기를 줄여나가서 안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는  목표로 합니다.’ 아마도  물레방아는 크게 내려갔다가 이제 다시 크게 올라오는 중일 것이다.


같은 병동의 병실에는 할머니들이 계셨다. 넘어져서 무릎뼈가 부서져서 입원한 할머니도 계셨고,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할머니도 계셨다. 할머니들은 매일 우셨다. 아파서 우셨고, 막막하여 우셨다. 본인들은 이제 죽음이 다 와가는데, 이런 몸에 이렇게 수술을 하고 아파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우셨다. 그냥 하루빨리 죽어버리면 덜 아플 텐데 하며 우셨다.


나는 할머니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할 수 없었다. 죽어버리고 싶다고, 살아있는 이 시간이 죽음보다 더 무섭고 더 고통스러운 게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하시지 마시라고, 건강하게 지내셔야 된다는 말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재활하느라 힘겹게 걸어 다니는 할머니들에게 ‘저는 휠체어 신세인데, 할머니들은 아주 뛰어다니시네요!’ 하고 웃었다. 할머니들도 그제야 웃으셨다. 우울증 환자인 내가 우울증을 앓는 것 같은 그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었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 발에는 깁스를 매달고 있어 어디론가 나갈 수 없는 여름날, 침대에 앉아서 ‘이것이 행복한 것일까? 우울하지 않음이 행복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 좀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