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에 걸을 수 있는 좋은 길과 코스를 답사하며 다닌지 1년 여 되어 간다. 이제는 서울 근교에서는 모르는 길이 없을 정도로 꽤나 돌아 다녔고 공원과 숲길을 이어 나름에 장거리(?)코스도 구상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면 알 수 없는 숲길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지방권역 별로 하나 둘씩 둘레길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이였다.
많이 걷다보니 코스를 구성하고 어떤 길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게되면서 관련된 일을 해보기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우연찮게 지방 팸투어에 참석하면서 나와 유사한 일을 하는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길을 찾고 글로써 소개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그 사람은 자신만에 둘레길을 개척하고 만드는것이 주관심사이며 숙명의 일이라고 하였다. 나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사람이 먼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호감이 가면서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 어떨지 제안을 했었다.
둘레길 코스를 만든다는 것은 혼자하기 쉬운일은 아니였다. 같이 답사하고 정보를 만들고 홍보하는 일도 해야하기 때문에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체감해오던 터였다.
이렇게 그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려고 한 지역이 충남 보은이였다. 보은에는 속리산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삼년산성과 동학운동의 최종 저항지라는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둘레길 조성에 대한 제안서를 쓰기위해 우선 해당지역을 알아야 했기에 무작정 보은으로 차을 몰고 떠났다.
서울에서 두 시간여 고속도를 타고 청주를 거쳐 도착한 보은군의 모습은 인상적이였다. 주변에 산으로 둘러쌓인 내륙의 땅으로 마치 산이 커다란 성처럼 애워싼 평원의 마을 같았다.
보은읍 가운데로 하천이 흐르고 그 주변에 옛 관아건물과 향교가 남아있고, 그 사이로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산을 바라보면 띠처럼 보이는 삼년산성이 벨트처럼 길고 넓게 산을 휘감고 있었다.
관아터 주변에 차를 세우고 마을주변 길을 따라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차로 다니다 보면 세세하게 골목길까지 확인할 수 없도 없고, 놓치는 풍경이나 유적지 등을 볼 수 없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길을 만들어 연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레길을 조성할때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안정성이다. 편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차량 통행이 많은 인도는 안전할 수도 있지만 소음도 있고 횡단보도에서는 신경을쓰고 다녀야 하기에 가급적 이러한 코스를 우회하는것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터라 계속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보은군 둘레길의 요점은 동학공원과 삼년산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것을 해결 할 수 없으니 우선 주요 거점이 될 곳들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했다. 보은읍 마을과 하천주변을 둘러본 후 차를 타고 삼년산성으로 입구로 이동했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산성으로 백성들이 도와 3년만에 완성했다는 산에 있는 산성이다. 크지는 않지만 조선에 만들어전 한양도성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편편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데다 폭이 넓고 마차가 다녀도 될 만큼 넓었다. 성문은 보이지 않지만 그 흔적은 앞과 성 뒤편에 남아 있다.
일부는 돌담이 무너져 옛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저 당당하게 적군과 대치했을 산성의 모습을 상상 할 수 밖에 없다.
성곽을 따라 산성을 한 바퀴 돌아 걷는것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짧은 구간이지만 보은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이곳에 와야할 이유가 분명하다.
삼년산성이 주는 산성의 강인함이 여운으로 남은 채 다음에 확인해 보아야할 장소로 이동한다.
첫 일정의 마지막 장소는 '동학기념공원'이다. 기념조형물과 언덕주변을 산책할 수 있도록 데크길이 조성되 공원이다. 동학운동이 전개되면서 관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곳이 보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커다란 동학기념공원이 조성된 듯 하다.
하지만, 넓고 큰 공원에 비해 관리가 부실해서 인지 여기저기 망가진 돌계단과 데크길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여기를 둘레길의 피날레로 정하려 하기에는 왠지 부족함이 있어 보였다.
이날 답사를 통해 보은지방에 둘레길을 개설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동학기념관과 삼년산성을 잇기에는 산주변으로 갈 수 있는 숲길이 보이지 않았고, 둘레길의 주제를 무엇으로 해야할지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동학과 기타 주변의 유적의 의미로 봐서는 상충하기 때문이다.
둘레길을 직접 조성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보니 나름 가슴속에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둘레길을 만들지 오로지 그 생각만 가득했던 보은군의 답사 일정이였다.
첫 답사 이후 주변정보를 취합하고 추가 답사까지 진행하여 제안서를 작성했었다. 일을 같이하기로 했던 그 사람을 통해 제안서를 전달했지만 결굴 둘레길 조성관련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보은군에는 이렇다할 둘레길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날을 통해 둘레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리고 내가 길여행가라는 일이 직업으로써 새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스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나름에 분야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진정으로 하고싶고 해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도 보은군 마을길을 다녀온 후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길을 찾고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