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길위에 색깔이 변할때, 흰눈이 쌓인 서울둘레길 용마산길

사진이 있는 길여행 에세이

   지난 2015년에 쓴 책 때문인지 몰라도 서울둘레길은 나에게 있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서울둘레길을 주제로 하여 걷기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인터뷰도 많이했었고, 서울둘레길에 숨어있는 볼거리를 이야기로 들려주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는 내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서울둘레길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어찌하여간에 지난 토요일,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완주하기위해 2코스부터 새롭게 출발하였다. 계절이 지나갈때 마다 무수히 지나왔던 길이지만 오늘은 다른 사람과 다른 날씨와 마주하다 보니 느낌이 새롭다.


  게다가 아침부터 흐린 날씨탓에 비가 올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운이 좋으면 첫눈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화랑대역에서 묵동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망우고개에 다다르니 싸락눈처럼 보이던 눈이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하여 굵은 눈송이를 뿌려대고 있었다. 


   "오늘 참 운이 좋구나! 길위에서 눈을 다 맞고, 눈꽃이 피는 용마산과 아차산을 보다니..."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아니면 누구와 걷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을 받는다. 아차산길은 보통 4월에 벚꽃 필때가 아름답고, 더운 여름에 시원한 잣나무숲에서 쉬어가기 좋아 땀을 식힐 수 있고, 가을에는 단풍이 가득한 곳이다. 


   겨울에 눈이 내릴때 온적이 없었던 이곳은 눈이 쌓이면서 전혀 다른 둘레길로 보일만큼 신비한 숲이 되었다.


   봉긋 솟은 무덤에 봉분이 무섭게 보이기는 커녕 하얀 눈이 쌓이면서 포근하고 안락하게 보인다. 추울까봐 흰눈이 쌓여 이불을 대신하여 그런지도...


 점점 눈이 세게 내리면서 나뭇가지에는 찬찬히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꽃이 피어올랐다. 붉고 갈색빛이 돌았던 참나무숲은 하얗게 변하여 수묵화처럼 보였다.


   여기는 망우공원을 따라 용마산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예전에 보아왔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같이 걸었던 동행들도 말이 없다. 그저 내리는 눈을 보며 직접맞아가며 운치있는 둘레길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겨울에 걷기좋은 길은 눈이 쌓인길도 멋지지만, 눈이 내릴때 걸으면 그보다 몇 배 멋있어요.! 태백산에 갔을때 이를 경험했었죠."


   이런 얘기를 동행들에게 얘기해주면서 눈맞으며 걷는 날이 드문 경험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비맞으며 걷는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빗물이 튀면 옷이 젖기도 하지만 왠지 성가시게 느낀다. 하지만, 눈이 오는 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눈을 맞으며 걸어도 웃는 모습을 하거나 옅은 미소를 끊임없이 담고 있기도 한다.


   같은 물인데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은 달리 대한다. 하마도 하얗게 보이는 눈이 무언가 가리우거나 신비롭게 덧입혀 주기 때문이 아닐런지...



  깔딱고개를 넘어가는게 미끄러울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다시 잊어버린다. 


  "그냥 즐기자 ! 이렇게 눈을 맞으며 걸어본것이 얼마만인데...!"



 아차산에 올라 한강이 보여야할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올라오는 숲길에도 주변을 내려다봐도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용마산과 아차산, 그리고 여기를 찾아온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서울 도심에 있는 숲길을 온것이 아니라 어디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다행히도 아차산을 내려올때부터 눈이 그쳤다. 그리고 하얗게 쌓인 눈때문에 어둑해질 저녁시간이지만 어둡지 않다. 나무위에 쌓인 눈이 형광등을 켜 놓은 듯 길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맞이한 눈을 그냥 바라본것이 아니라 직접 눈을 맞으며 걸었던 서울둘레길의 아차산길...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생길지 모르지만 난 몇 번을 다녀온 이곳에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진정 용마-아차산의 사계절을 모두 눈에 담았다.



아차산을 내려오는 길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단풍잎을 달고 있는 단풍나무가 보였다. 그위에 흰눈이 쌓이니 왠지 모르게 단풍잎이 애처로와 보인다.


  붉은 빛을 제대로 발하지도 못하고 눈때문에 가리워져 금방 떨어지게 될테니 말이다.  바닥에 떨어진 고운 단풍잎이 그래서 더욱 붉고 이뻐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도 꽃무릇이 활짝 피었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