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주말 늦은 저녁에 마닐라 말라떼 지역의 한인회 간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난감한 일이 생겼다고 좀 와달라는 거다.
가게 개업행사에 지인을 초대했는데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해서 경찰이 연행하러 왔다는 거다.
그 한인회 분도 필리핀에 오래 살았고 그 동네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한 분이라
웬만한 일은 본인이 처리가 가능할 텐데 오죽하면 개인전화로 연락을 했을까 해서 말라떼로 향했다.
말라떼의 모 호텔 6층에 새로 연 KTV 개업 기념으로 한국에서 투자자를 초대하여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투자자가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젊은 여자 2명에게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고 여자들이 항의하자 사과도 없이 자리를 뜨니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 여자들은 사촌 지간인데 지방 도시의 시장의 딸과 조카로 마닐라에 놀러 왔다가 일이 생긴 것이다.
이미 아버지를 통하여 연락이 오니 경찰들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출동한 것이다.
도착해 보니 호텔 앞은 이미 난리였다.
출동한 경찰들은 그를 데려가려고 하고
그 한인회 간부는 또 다른 경찰들에게 연락해서 자기 손님이 연행되지 않게 하려고 하고
호텔 경비원들에 여자의 일행들까지 서로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내가 긴급히 끼어들어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우선 여기서는 답이 안 나오니 경찰서에 가서 서로 입장을 듣자.
내가 통역 및 중재자 역할을 하고 서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제야 경찰서로 이동했고 다행히 그 여자들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 높아서
내가 연신 사과를 하자 기분이 좀 풀렸는지
그 사람이 정식으로 사과만 하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 투자자가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애들한테 사과를 하냐'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손녀같이 귀여워서 그냥 등을 토닥거린 것뿐이라며 잘못한 게 없다고 객기를 부렸다.
불리한 상황이고 증거 cctv도 있는데
이러다가 정식으로 사건접수가 되면 당분간 갇혀있게 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술이 많이 취한 것도 아니었다.
여자들도 화가 나서 합의 및 사건접수 취소를 안 하겠다면서 자리를 떴고
나도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왔다. 시간낭비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 한인회 간부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 양반은 새벽에야 정신이 들어서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달라는 대로 합의금을 주겠다고 하여 우리 돈 약 4백만 원을 주고서야 풀려났다고 한다.
진짜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