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거의 자정 무렵에 당직 외교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천발 마닐라행 필리핀 항공 기내에서 담배를 피운 한국인이 체포되었는데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럴 때는 짜증이 난다.
밤에 나가보는 거 때문이 아니라 창피해서 짜증이 난다.
분명 기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처벌을 받는다는 걸 몰라서 한 행동은 아닐 게다.
필리핀 항공은 센테니얼 공항 즉, 터미널 2를 전용 공항으로 쓰고 있는데
자주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자정이 넘은 한밤 중에 공항경찰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차장 구석에 컨테이너로 만든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자 모두들 나를 기다린 눈치다.
공항경찰, 필리핀 항공 사무장과 항공사 소속 변호사까지 나와있었다.
비행을 끝내고 쉬고 있을 시간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우선 사과를 하고 사실관계 확인을 했다. 남자는 예상대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담배를 왜 피웠냐고 묻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는데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왕 불 붙인 거 한대 다 피우고 나왔는데 뒷사람이 승무원에게 항의를 해서 걸렸단다.
요새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다.
그 남자는 아침에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다행히 설득 끝에 필리핀 항공 측에서 업무방해로 고소까지는 진행하지 않은 덕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이 남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날밤 도와준 것 때문에 귀국 전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마닐라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는데 숙박비가 추가로 과도하게 나왔다는 거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걸 알기에 직원을 바꿔달라고 하니 금연객실 내에서
계속 흡연을 해서 규정대로 벌금을 물렸다는 것이다.
객실 내에 담배냄새가 지독해서 냄새를 빼는 동안 객실을 비워둬야 한단다.
왜 흡연이 되는 방을 이용하지 않고 금연실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물어볼 것도 없다.
기내에서도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반성은커녕 비싼 담배를 피운 나라로 기억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