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한 바퀴 돌다가 시멘트 바닥에서 커다란 달팽이와 마주쳤습니다. 언젠가 모르고 밟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맘이 찝찝했죠. 화단에 옮겨주려고 보니, 거기에도 다른 녀석이 가을비 샤워 중이네요. 어디서 기어와 여기까지 온 건지, 언제 몸집이 이리 커졌는지, 보이지 않는 시간이 궁금해집니다. 동양달팽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육상패류 중 가장 크다고 하네요. 빙글빙글 돌아가는 달팽이집을 보고 있자니 이 뜰이 마치 깊은 숲 속인 듯 느껴집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여름과의 결별을 알리고, 꽃무릇은 폭죽을 터뜨려 축하하는데, 흔치 않은 생명들이 정원을 즐기니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