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화
흔히들 언어는 언어 사용자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들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뭐, 과학적으로 이를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경험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적자생존의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논리는 어렸을 때부터 체득하게 되는 섭리라고나 할까? 강하고 굵게. 인생 한방. 뭐 이런 말들도 인생에 대한 서민들의 생각이 녹아 있는 표현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곧잘 역설적인 생각을 내놓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기야.'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언젠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샌가 항간에는 가늘고 길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가 돈다.
이런 역설적인 사고 패턴은 단어의 사용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때가 있다. '존버'의 용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존버'. 무슨 말의 축약인지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태생이 좋은 말은 아니다. 작금의 한국 사회를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속된 표현으로 태어난 말이다. 'n포 세대'라는 젊은이들이 시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얼핏 속되 보이는 그 말 속에서 한국 땅에서 삶을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굳은 심지를 살펴주어야 한다. '존버충, 강제 존버'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그렇게 봐 줄 수가 있을까?
'존버'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삶을 지탱해 주는 위대한(?) 강령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존버 정신'인다. 그리고 그런 정신을 탑재한 '존버 장인'이 탄생하면 젊은이들은 무한한 경의를 아낌없이 바친다. 어쩌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존버충'인지 '존버 장인'인지를 점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 아닐까?
사회구조적으로 '강제 존버'를 유전 받고 태어난 이들에게 '존버'는 아~주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삶의 현실이었기에 이들은 '존버 정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그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는 '존버 장인'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주어진 현실이 기성세대와 달랐기에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음은 당연하고, 그런 차이가 기성세대의 눈에 안 좋게 비쳤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디아스포라적 현실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후 세대나 민주화 세대나 매한가지일 터.
어쩌면 한국적 풍자 정신이 '강제 존버'의 시대에 '존버충'인 줄로만 알았던 서민적인 삶 속에서 '존버 장인'을 탄생시킨 힘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