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와 이름과 문화
이름을 지어 본 적이 있다면 꽤나 고민한 경험이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인지상정일지 아닐지 몰라도 기왕이면 이쁘거나 멋지거나 혹은 뜻한 바를 담아 짓고 싶은게 이름이 아닐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이 다른 대상과 교류하기 위해서 행하는 첫 행위이다. 이름도 모르는 대상을 머리 속에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름의 그런 속성을 잘 포착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최초의 인간이 한 첫 번째 일이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이름'은 지각된 우주를 인식의 세계로 호출하는 특수 기호다.
그래서일까? 이름은 힘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대상에게 이름을 부여할 때 '뜻한 바'를 담으려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도 어쩌면 그런 힘을 은연 중에 믿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멘, 사바하 등의 축원 끝에 붙이는 말들 속에 담긴 '(바라는) 세상과 말이 동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이름에 의미를 둠으로써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일까? 이름은 '불려질 것'을 전제로 짓는다. 언어의 주술성을 '이름 짓기'와 완전히 구별하기 어려워 보이는 부면이다.
한편, 어떤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다. 이름을 지어 놓고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는 그런 관행이 문화로 정착되기도 한다. 유교 문화권에서 산다면 부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자 ~자를 쓰십니다'라는 표현을 쓰도록 교육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입에 담을 때조차 특별한 언어적 양식을 써야만 한다. 왕의 이름은 당연히 못 부른다. 피휘법. 피휘 문화가 있다. 왕의 이름에만 사용할 수 있는 한자를 따로 지정해 둔다든가 이름을 입에 올릴 때에는 다른 방식을 쓴다든가 해야 한다. 글을 쓸 때에는 들여 쓰거나 내어 쓰거나 특별히 크게 쓰거나 하는 식의 특별한 방식까지 더해진다. 함부로 부를 수도 함부로 쓸 수도 없다. 일상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특별한 존대 행위를 곁들인 특수한 표현을 써야한다고 하면 고위 관직에 있을수록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해질까?
인간의 이름도 때에 따라서는 함부로 쓸 수 없을진대 신의 이름이라면 어떨까?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좋을까? 사는 것도 바쁜데 뭐 그런 고민을 할까 싶어도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그런 고민이 특정한 문화를 낳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절대 신의 이름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왕의 이름은 쓰되 특별한 언행을 더하여 특별한 존경심을 담아 사용하는 문제였다면 절대 신의 이름은 감히 사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모르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있었다.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의 논쟁이 아니라 이름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2001년도에 한국의 천주교 사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기사 참조).
이름.
관념론적으로는 인식의 토대인 상징.
문화인류학적으로는 그 사용 방식에 관한 다양한 양식(축복, 피휘 등)과 관련된 상징.
사회학적으로는 평판 관리의 핵심인 상징.
이름 관리만 잘 해도 인생 반은 관리한 게 아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