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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의 겨울, 합격의 봄

생애 첫 기나긴 기다림

by KOSAKA

이 글은 '빗물 새던 교실, 간절함의 계절​'에서 이어집니다.


학력고사 당일의 아침은 유난히 차가웠다. 시험장까지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는 이제 희미하다. 다만 부모님이 두 손에 쥐어주신 작은 약병, 우황청심환 한 알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그 한 알에 담긴 것은 단순한 약효가 아니라, 두 분이 아들에게 건네던 믿음과 염려였다. 새벽마다 기도하던 어머니의 애끓는 숨결은, 그 시절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품었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시험은 무사히 끝났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EBS 정답 풀이 방송을 따라가며 답을 확인했다. 국어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수학은 늘 그렇듯 냉정했다. 빗금이 동그라미보다 훨씬 많았다.


절망감이 서서히 차오르던 그 순간, 옆에서 함께 답안을 채점하던 어머니는 피곤에 지쳐 조용히 잠이 드셨다. 새벽마다 기도를 이어오신 피로와 안도감이 한꺼번에 덮쳐 온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홀로 남겨진 듯 야속한 마음이 앞섰다.


그다음부터 결과 발표일까지,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합격선과 내 점수가 거의 겹쳐 있었기에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우리 집은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다행히도 지하실 한 칸을 내 공부방처럼 쓸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고전문학 전집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친구들이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며 긴장을 풀 때, 나는 책 속에서만 위안을 얻었다. 현실을 잊기 위한 건전한 도피였다.


책을 읽다 불현듯 불합격의 그림자가 스치면, 머리를 묻은 채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밥상에 앉아도 말이 줄었다. 집안 사정을 잘 알기에 재수는 불가능했다. 아직 실패라는 것을 겪어본 적 없는 내 마음은 한없이 연약해졌다.


마침내 발표일이 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환호 대신 깊은 한숨이 먼저 터져 나왔다. 입학식 날, 친척 어른들까지 동행해 주셨다.


우리는 학교 정문 앞 카페에 앉아 창 너머로 캠퍼스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나는 그 미소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문제는 학비였다. 첫 등록금을 치르고 난 뒤부터는 매 학기 대출로 이어졌다. 결국 대부분은 내가 갚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 빚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달콤하고, 때로는 초라하며, 그러나 무엇보다 뜨겁던 나의 대학 생활이.


수험생 자녀 둔 부모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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