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의 단위로 살펴보는 인생의 어떤 시절, 그 시절의 이전과 이후와 지금
*2014년 6월 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저자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이 출간된 것은 2004년이다. (나는 이 책을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2년에야 읽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저자는 십 년 전의 『청춘의 문장들』을 크게 의식하면서 『청춘의 문장들+』라는 산문집을 올해 출간하였다. 등단을 하고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출간하였지만 전업작가에 이르지 못한 채 김과장이라는 생활인과 김작가라는 문학인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던 김연수에게 십년 전의 산문집은 아마도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런 탓에 작가는 10년이 흐른 지금, 다시 10년 전을 되돌아보며 10년 후를 살펴본다. 구성도 재미있는데 작가가 직접 쓴 산문,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한 북 칼럼니스트 금정연과의 대담을 하나의 짝으로 갖는 열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쓴 직접 쓴 산문보다는 대담의 말들이 더욱 리얼하게 와 닿는다.
“...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좋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빠지지도 않는 것 같아요. 뛰어난 사람들만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빠질 가능성이 더 많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나빠지게 돼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여서 지금 10년 전의 저를 돌이켜본다 한들 똑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빠지지도 않았어요. 그 정도라면 정말 다행이고, 잘 산 거죠. 뭔가 다른 게 있다면 외부의 일들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차이가 나요. 감수성의 측면에서 10년 전보다 지금은 외부의 일들을 덜 받아들이죠. 대신 해석하는 능력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아요. 결과적으로는 거의 똑같은 거죠.” (p.35)
2006년 작가의 소설 『사랑이라니, 선영아』에 대한 리뷰의 시작 부분에 나는 이렇게 적고 있다. 동년배들의 소설을 읽는 일은, 똥개도 자기 영역에서 싸움을 할 때는 50퍼센트 먹고 들어간다는 말과도 같이, 어줍잖은 상황 농담에도 실없이 웃을 수 있고, 항간에 떠돌았던 또는 떠도는 궤변의 나열에도 무리없이 동참할 수 있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고 때때로 재밌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은 이번 산문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은 이즈음의 내가 하는 이런저런 생각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나아진 것 없는 마흔 중반의 나를 향하여 시도 때도 없이 자학적인 지청구를 늘어놓고는 하였는데, 작가 또한 그러한 시간들이 없지 않았나보다. 그리고 위와 같이 꽤나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다.
“모든 연령이 다 힘든데, 인생에서 골짜기처럼 꺼지는 나이대가 있죠. 그게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p.49)
‘골짜기처럼 꺼지는 나이대’인 사십 대를 함께 살아내고 있는 작가에게 묘한 동료 의식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와 건성이지만 작가의 글을 읽어내는 독자이지만 일정 부분 겹치고 얽힌다. 한때(라고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직 저물지 않는 뭔가가 있기도 한) 글을 쓰고 읽는 일에 전 생애를 걸어볼까 마음먹기도 하였던 적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부분을 읽을 때는 은근슬쩍 얼굴을 붉힌다.
“간절함, 우연, 재능이라는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글쓰기, 혹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재능은 일단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서른 살까지만 산다면 재능이니 태어난 환경 같은 게 결정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 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건 무의미해지죠. 우연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이지만 말했다시피 그냥 발생하지는 않아요. 복권을 사지 않으면 복권에 당첨될 수가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이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겠죠.” (p.78~79)
그러니까 아무래도 내게 부족하였던 것은 ‘간절함’이라기보다는, ‘그 간절함이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었던 셈이다. ‘간절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 사살을 당하고 있으려니 씁쓸하다. 어찌되었든 ‘우연’이나 ‘재능’ 보다는 ‘간절함’을, 그리고 ‘간절함’을 넘어 ‘그 간절함이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으로 꼽고 있는 작가는 일단 미덥다.
“10년 후면 2024년이네요.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자면, 금방 올 것 같아요.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마도 그때까지는 계속 소설을 쓰겠죠... 산문은 잘 모르겠어요. 갈수록 소설이 좋아지고만 있어서요. 제가 하는 여러 일들 중에서 이것보다 대단한 일은 없으니까 계속하고 싶을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니까요. 언제 어떤 순간에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늘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언제나 쓸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소설을 읽는 것도 계속할 것 같고요. 소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을 평생 읽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좋은 인생은 없을 것 같아요. 결국 계속 소설을 읽고 쓰겠네요.” (p.194)
작가의 십년이나 독자의 십년이나 빠르기는 매한가지다. 계속 소설을 읽고 쓰고 있는 자신을 예측하는 작가, 의 글을 나 또한 십년 뒤에도 계속 읽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작가가 소설을 쓰고 있는 것처럼, 뭔가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니게 느끼도록 만들어줄 무언가가 발견되는 것이다. 앞으로 십년, 아마도 무척 빠르게 지나갈 십년 안에...
김연수 / 대담 금정연 / 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 마음산책 / 208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