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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4. 2024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다키모리 고토

갖가지 복선이 순진무구하게 난무하면서도 착하디 착한...

  나는 슬픔이든 기쁨이든 특히나 슬픔이라면 그 극한까지 밀고 나간 다음 쿨하게 돌아서는 것이 좋은 슬픔 해소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 용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만 있을 때 이후 고양이 용이의 심각한 신부전증을 알고 나서 그리고 고양이 용이에게 투약을 하며 사람과 고양이 양쪽 모두가 괴로워하는 와중에 이 책을 구매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펑펑 울고 (마지막 삼십 페이지 충격적인 결말 터지는 울음과 같은 광고 문구가 나를 유혹했다), 그 다음에는 차분해져야지, 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기를 계속해서 망설였다. 책의 내용이 만약 고양이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고양이 용이가 의사 선생님의 우려처럼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쿨하게 뒤돌아서기는 커녕 뜨거운 망부석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겁먹었다. 게다가 병원으로 집으로 고양이 용이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하루 세 번 가루약과 물약과 알약을 먹이고 수액을 놓느라 책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용이는 좋아졌다.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갔을 때 3.9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그저께 4.78킬로그램이 되었다.


  “애초에 나는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동물 보호 활동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가게 앞에 눌어붙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었고, 어쩌다 보니 놓은 유미코 아줌마의 노트를 넘겨보았고, 어쩌다 보니 계속해서 동물과 얽히게 된 것뿐이다.” (pp.70~71)  


  이제 나는 아무런 부담이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이제 고양이 용이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지금 방금 고양이 용이는 내 무르팍을 스윽 문대고 지나가더니 주방 옆의 제 밥그릇에서 열심히 사료를 먹는 중이다, 아그작 소리도 요란하게.) 그리고 책에는 고양이의 죽음이 없다. 안타깝게도 몇몇 인물들의 죽음이 등장하지만 남은 인물들이 그 죽음들을 삶으로 치환시키고 있어 다행스럽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형은 가게 앞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유미코라는 성격 밝은 아줌마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가도쿠라라는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에게도 알랑방귀 뀌는 일 없이 그저 담담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 담담해서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형이었을 때와 달라진 점은 없었다.” (p.183)


  소설에는 모두 네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 이야기들은 혹은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유미코 아줌마가 파친코 가게 앞에 놓아둔 한 권의 노트에서 시작된다. 그 노트는 개나 고양이와 관련되어, 그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적거나 이미지를 붙여 놓는 용도로 제작되었는데, 거기에 실린 고양이에 대한 말이나 사진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의 밑바닥에는 어머니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채 청춘으로 자라난 고로와 히로무의 어린 시절이 그리고 슬픔이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갖가지 복선이 난무하긴 한데 그것들이 만화처럼 순진하게 구성되어 있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 주로 ‘감동’을 테마로 한 소설이나 동화를 집필하고 있다는 저자 소개가 나오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신의 서재에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이미 사육중이라고 하는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착하디 착하다. 사료를 실컷 먹은 고양이 용이는 마약 방석에서 숙면을 취하는 중이고...



다키모리 고토 / 손지상 역 /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 네오픽션 / 231쪽 / 2016 (2016) 


                                                                                          *2017년 10월 2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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