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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1. 2024

성동혁 《뉘앙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2021년 12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새벽이 되면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긴 안부는 잠을 깨우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안부 없이도 또박또박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많이 온다. 창을 열면 눈이 발등까지 떨어진다. 하늘이 온통 안부 같다.” (p.17)


  해가 저물어간다. 하루해가 저물고 또 하루해가 저물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물어야 할 안부들이 한 움큼인데 한 해가 다 가도록 움켜쥔 주먹을 아직 펴지 못하고 있다. 부스스 고개를 들면 중천이라서 그만 다시 고개를 처박곤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게으름은 떡진 머리를 타고 내려 축 처진 어깨에 가 닿았다. 얼마전 후배에게 말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게을러져야 해, 그게 도리야.


  “문학을 삶의 전부처럼 대하는 사람보다, 일부로 여기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기운다. 그저 삶을 꾸리는 데 문학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그러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장과, 떠나지 않은 풍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괴로움으로만 두지 않길 소망한다. 더 적확하고 풍성한 글을 쓰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싶다.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p.32)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속으로 카운트를 하고 있다. 마지막 하루해가 다가올수록 DIARY 2021 이라고 제목을 붙인 파일 옆의 크기를 슬쩍슬쩍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크기는 598KB 이다. 작년의 387KB 이나 재작년의 462KB 보다는 확실히 커졌지만 그 전해인 2018년의 612KB 에는 조금 못 미친다. 나는 조금만 더 분발하기로 한다. 아직 내게는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p.67)


  실루엣이라는 단어와 함께 뉘앙스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실루엣이라는 단어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강릉 여행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아한다.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엿보았던 빳빳한 천 너머로 비친 여인의 실루엣을 여태 기억한다. 뉘앙스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수습하고 있지 않은 단어라서 좋아한다. 대신 뉘앙스라는 단어를 통하여 나는 무엇이든 수습하는 자유를 누리곤 하였다. 


  “오월이에요. 생일이 지났고 장미가 넘어오는 담벼락이 보여요. 담 안에 행복이 있는지 담 밖에 행복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장마가 넘어오는 오월이에요. 담이 무슨 의미겠어요. 장미가 넘어오는 오월인데.” (p.161)


  과거에 오월은 내가 마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었다. 팔에 커다란 화상의 상처를 가진 나는 반드시 반팔을 입게 되는 유월이 오기 전인 오월에 미리 조마조마해지곤 하였다. 어쩌면 유월보다 오월이 더 싫었는데, 월요일보다 일요일이 더 싫은 직장인의 마음 같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오월을 꽤나 즐기게 되었다. 올해 오월에 나는 아내와 함께 강릉에서 자전거를 타고 정동진으로 달려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강릉으로 되돌아왔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자는 새벽이다. 녹음기를 켜고 녹음한 문장들을 공책에 옮겨 적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쉬어야 한다. 그 호흡이 시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늘 모두 옮겨 적지 못하면 내일 적어야 한다. 내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문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결심은 거창해진다. 오늘의 것이 내일의 것을 잘 만났으면 좋겠다. 휘발될 것들을 휘발되고 침전되어 있는 것들이 미세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남는 얼굴과 풍경과 문장. 그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일까.” (p.223)


  나는 책을 읽고 몇 개의 문장을 옮겨 적을 때마다 작은 평화로움을 느낀다. 복기의 과정은 첫 번째의 설렘에서 벗어난 안도를 제공하고는 한다. 나는 그제야 집중에서 풀려날 수 있다. 뉘앙스나 실루엣이나 설렘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라면 콤플렉스는 한때 갈구하였으나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단어이다. 《뉘앙스》의 저자 성동혁은 시인이다. 어딘가 아픈데, 굉장히 좋은 친구들을 옆에 두고 있다. 



성동혁 / 뉘앙스 / 수오서재 / 227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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