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이소영 《식물과 나》

조금씩 유심히 이파리며 수피며 꽃이며 살피는 동안...

*2021년 10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내의 깁스가 짧아진 다음부터는 매주 둘레길을 걸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의 하늘은 정말 파랬다. 족두리봉과 향로봉과 비봉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였다. 손에 잡힐 듯 하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길을 매주 걸었고, 손색없는 가을 하늘이 계속 되었지만 그날만큼 선명한 파란색을 띄지는 않았다. 우리는 충분히 만족하였고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꽃 색은 곧 꽃잎 색이다. 꽃잎은 수분을 돕는 매개자인 동물의 이목을 끄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식물이 사는 숲에서 한정된 나비와 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식물은 매개 동물이 좋아할 만한 색을 보여주거나 그런 향을 내서 각자의 방법으로 경쟁해야 한다. 벌과 나비의 눈에 띄려고 해바라기는 노란색, 작약은 붉은색, 알리움은 보라색 꽃잎을 피운다. 흰 꽃은 나방과 딱정벌레 혹은 나비가 좋아하고, 붉은색 꽃은 새들에게 사랑받는다. 벌과 나비는 노란색부터 보라색까지 좋아하는 색 스펙트럼이 넓다. 나는 노란 꽃을 보고 벌과 나비를 떠올리고, 붉은 꽃을 보면서는 새를 생각한다.” (pp.34~35)


  아내의 깁스가 아직 길었을 때는 안산 둘레길이나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을 찾았다. 안산 둘레길과 하늘공원에는 모두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조성된 길이 있다. 하늘공원의 메타세콰이어 길이 끝나는 즈음에는 퍼지지 않고 모아지며 솟아 있는 포플러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포플러 나무가 미루나무이고 플라타너스 나무가 양버즘나무네, 라고 정보를 나누며 아내와 나는 그 길들을 주말이면 내내 걸었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늘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지 목적어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식물을 좋아하거나 사람을 좋아하거나. 그리고 우리는 그 대상이 왜 좋은지를 생각한다. 편안하게 해주어서, 혹은 마음이 잘 맞아서. 여러 이유를 곰곰이 따져 ‘좋아함’을 합리화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상을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면 모든 행동이 용인될 거란 착각. 모든 문제는 이 그릇된 방식에서 비롯된다.” (p.90)


  우리가 가장 자주 걷는 코스의 마지막에는 은평한옥마을이 있고, 그곳에는 수령이 200년 안팎인 느티나무들이 있다. 느티나무들의 둘레는 3미터 가량이고 높이는 20미터에 조금 못미친다. 우리는 요즘 느티나무와 느릅나무를 잘 구분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두 나무와 만날 때마다 잎과 수피를 유심히 살핀다. 들레길에는 밤나무도 많은데, 항상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이들이 모두 까놓은 상태이다. 아내는 밤송이를 발로 까고 싶어 하였는데 알맹이가 들어 있는 밤송이를 여태 발견하지 못했다.


  “들국화라고 하면 한 종의 식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들국화라는 이름의 식물은 없다. 들과 산에서 스스로 자라는 국화과 식물을 싸잡아 들국화라 할 뿐이다. 가을 산과 들에선 우리가 들국화라 부르며 지나쳤던 흰 꽃의 구절초, 샛노란 산국과 감국, 보라색 개미취와 쑥부쟁이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구절초에는 또 이와 비슷한 산구절초, 포천구절초, 남구절초 등도 있다.” (p.178)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꽃은 서양등골나물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외래종이고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생태계 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진을 찍어 검색하면 꿩의 다리가 검색되기도 하는데 꿩의 다리는 미나리아재비과이고 서양등골나물은 국화과이다. 이외에도 노루오줌이며(그런 것 같다), 개망초(계란꽃이라고 불렀다), 구절초를 비롯한 둘국화들을 종아리 근처의 높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식물세밀화가 흑백 그림으로 발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후나 토양 조건 등 환경과 시간에 따라 식물의 색이 미세하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색상환을 다 기록하지 못하고 특정 색을 선택해 채색한다면 보는 사람들이 그 색만 정답이라 여기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식물세밀화가 주로 식물도감의 삽화로 발전하면서 인쇄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옛날엔 한 번에 여러 색을 인쇄할 수 없었거니와 인쇄 과정에서 색이 바뀌는 일도 있었기에 그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틀린 정보를 제공할 바에는 애초에 색을 넣지 않는 편이 바람직했다. 중요한 그림 기록물 대부분이 흑백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pp.250~251)


  둘레길을 걷는 동안 하늘이며 건너편 산봉우리를 주로 본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나무며 풀이며 꽃을 살피기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씩 다르게 생긴 이파리를 구별해보려 하고, 수피의 농도며 갈라진 모양을 따져보려 하는 통에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집에 꽃, 나무, 풀과 관련한 책이 꽤나 있다. 글을 쓰는 중에 잠시 찾아보았는데, 아내가 책등 앞의 남은 부분에 각종 식료품 및 건강식품을 가득 쌓아 놓아 찾기에 실패했다. 우리가 산에 갈 때 타가는 보충제도 바로 거기에 놓여 있다.



이소영 / 식물과 나 / 글항아리 / 293쪽 / 2021 (2021)

매거진의 이전글 김민영 《농담과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