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시각각 15화

앞뒤를 홀연히 뒤집고 안팎 구분을 망가뜨리려는...

김지녀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by 우주에부는바람


앞뒤를 홀연히 뒤집고 안팎 구분을 망가뜨리려는 것은 언제나 시인의 본성이다. 응시에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시인의 책무이고, 움츠러들려는 어깨를 자꾸 만개하며 써내려가는 것은 시인의 용기이다. 과거의 나를 독차지하고 있던 색을 전복시켜 새로운 누더기를 입히는 것은 시인의 만용이지만 세상의 독자들은 그 만용에 아랑곳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일탈의 세상으로 스스로를 슬쩍 넘겨 보내고자 한다.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 새가 보이지 않아서 / 음악과 같았다 // 한 달이 넘도록 책의 제목만 적힌 노트에 섬, 이라고 적었다 / 조금 일그러진 모양으로 섬이 커졌다 / 길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 이 섬은 무한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 노트에 줄 하나가 그어졌다 // 한 달이 지났을 때 / 창문의 테두리 하나를 나는 완성했다” - <정착> 중


현기증이 인다. 왜냐하면 오래도록 울렁거렸다, 서성거렸다. 땅을 이루지 못한 섬은 혼란스럽다, 통역되지 않는다. 나는 장소를 나열하고자 하지만, 흘러가는 것은 시간뿐이다. 보여지는 모든 것이 손님처럼 새삼스럽다, 천연덕스럽지 못하다. 보여주고 남은 장면들이 제법 길다, 자꾸 쌓여간다. 시는 때때로 잊고 있던, 그게 아니라 불현 듯 사라진 감각이 난도질 당하고 유폐된 창고 깊은 곳에(도) 있다.


무성영화


어항엔

순진한 구름이 헤엄쳐 다닌다


할딱대는 입 모양으로

주인공처럼 눈물을 흘린다


어항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흐느적대는 울음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 많은 것이 발견된다. 되도록 느리게 걷는 것이 좋지만 내달리느라 한참을 지나치기 일쑤다. 아무리 해맑은 것도 추상으로 더럽히는 꼬락서니가 출중하다. 내가 구성하지 못한 것을 내가 구성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다보면 먼 거리도 단숨에 숨을 죽이며 줄어들 수 있다. 미리 여운을 남기고 싶어서 도착하기 이전부터 축포를 터트린 것에 대한 형벌이다.


“방에 관한 진술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 점층적 구성이라면 / 밤은 깊어집니다 // 건물이 기울어지는 건 아닙니다만 / 고양이처럼 꼬리를 치켜세우고 걸으면 / 밤은 덜 출렁거릴까요? / 밤은 한 순간도 멈추질 않습니다 / 번식에 가까운 습성입니다” - <밤이 깊을 림> 중


이제는 알 수 없는 것들, 무수한 발자국 위로 터무니없이 솟구쳤던 것들, 깨어나기 싫어서 모른 척 하였던 것들, 주춤하며 뒤돌아보았을 때 때맞춰 사라지던 것들, 찢어버릴 때마다 할퀴던 날카로운 것들, 놓쳐서 쫓아갔지만 아슬아슬하게 또 놓칠 수밖에 없던 것들, 내가 오물거리며 잔뜩 씹었지만 뱉지 않고 삼켜버린 것들, 그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 남아서 여태 나를 염탐하는가.


“밟히다 만 모래는 발만 남은 모습이다 / 머리는 어디쯤 박혀 있을까 / 입속의 모래는 아무리 뱉어 내도 남아 있는데” - <모래 축제> 중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직 뜨지 못한 눈과 텅 빈 눈은 아마도 다르다. 앞장을 선 이들을 앞지를 필요는 없다. 어리석은 일이다. 잠깐 공터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순식간에 길어진다. 떠오르지는 않는 것을 내려다본다. 그런 심정이다. 내가 풍경이 되고 내가 풍경을 본다. 일탈과 이탈이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거듭되는 초면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되도록 많은 것을 모른 척 하고 싶은데...



김지녀 /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 민음사 / 142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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