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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아도 좋을 과거...

*2020년 5월 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여러 해 동안 그 해의 첫 번째 달이나 두 번째 달이면 그 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올해는 그러지 않았고, 아니 못했고 그것은 김금희 작가 덕분이었다. 저작권과 관련한 작가의 문제 제기는 옳았고, 작가의 문제 제기에 대한 출판사의 대응은 안이하거나 옹졸하였다. 출판사가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출간을 포기하였고, 이상문학상이 가지(고 있다고 치)는 권위가 아직 유효기간 내에 있는 것인지, 일종의 작가 돌려막기는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한 해가 되었다. 작가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십일년 동안 쓴 글들을 묶은 것이지만 가장 최근의 글들도 실려 있어서, 이 사건을 둘러싼 작가의 표정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도 있다.


  “이제 엄마네 마당에는 일구도, 일구의 새끼들도 없다. 옆집에서 공사하던 날 놀란 새끼들이 흩어져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마리는 일구와 봄을 보내다가 또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그 나이가 되면 으레 고양이는 독립하기 마련이라고 위로했지만 엄마는 새끼들이 정말 다른 곳에 정착을 했을까, 그렇게 해서 자기 보금자리를 제대로 마련했을까, 하는 염려를 거두지는 않았다. 엄마가 체험한 세계란 그런 소망 하나 충족하기가 참 어려운 세계이니까. 그뒤로 엄마가 마련해준 상자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던 일구는 또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일구가 지내온 상자는 버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길 위의 어미 고양이 일구가 언제라도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엄마는 필요하니까.” (p.30)


  하지만 작가가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엄마인데, 119에게 구조된 덕에 ‘일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길고양이와 엄마의 짧은 동거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엄마와 고양이는 지금의 내 일상에서도 꽤나 큰 면적을 차지하는 바 있고, 엄마가 고양이를 키운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주차장 고양이 흰둥이에게 엄마가 틈틈이 관심을 보이기도 하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내 얘기를 들은 한의사는 자기 역시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라며 ‘유이책보예용’의 원칙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해야 할 여섯 가지 행동에 관한 원칙이었다. 그러니까,


유감을 표시하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고

예방을 약속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비로소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용서를 행할 수가 없다.” (pp.40~41)


  실제로 작가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문장에 비한다면 산문의 문장들은 섭섭하리만치 얌전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어떤 말들은 고스란히 가져와서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는데 ‘유이책보예용의 원칙’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무수한 잘못으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과거들을 생각한다면 진작 필요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어쨌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몇 년간 세상은 점점 나빠졌지만 내게는 역설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들을 대부분 짝사랑하지만 가끔은 참지 못하고 애정을 고백하기도 하는데, 그때 상대방이 그냥 인사치레로 여기거나 덕담쯤으로 받아넘길 때는 어쩔 수 없이 서운하다. 혹시나 그러한 애정에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 추측하지 않을까 근거 없이 걱정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은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 최후의 온기인데 그런 것에까지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는 식의 냉소를 퍼부으면 곤란하다. 그런 냉소를 뒤집어쓰다보면 우리는 마음속까지 얼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어버리면 한낮에도 우리는 아주 추운 마음으로 걸어다닐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런 한낮을 원하지 않는다.” (pp.115~116)


  섭섭하리만치 얌전한 축, 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작가의 문장이 잠자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문단에서는 김금희라는 작가의 진면목이랄 수 있는 휘황한 문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다루는 폭넓은 사랑의 것들, 내가 너를 사랑하거나 내가 우리를 사랑하거나 우리가 너를 사랑하거나 네가 우리를 사랑할 수도 있는, 중 가장 먼저의 것이 있고, 작가는 거기서 계속 나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 소설의 시간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종결을 피하거나 지연시키면서 견뎌야 이야기가 된다. 연속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신뢰는 어떻게 오는가 생각해보면―적어도 내 경우에는―예측 가능한 것이 반복되면서 오지는 않았다. 버틴다는 감각도 없이 그저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의외의 것에서 삶은 동력을 얻고 이어지며 종결을 피한다...” (p.136)


  어쩌다보니 연거푸 이런저런 작가들의 산문집을 읽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 작가로 돌아왔고, 김금희 외에도 김영하와 배명훈의 산문집을 읽는 중이다. 그렇지만 산문만 읽다가 운문을 저어하게 될까봐, 김참과 박시하와 박연준의 시집을 침대 옆으로 옮겼다. 이러다가는 소설 읽는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김봉곤의 새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샀다. 어쨌든 읽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김금희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 문학동네 / 231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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