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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Jul 30. 2023

채집황홀

   

고사리를 딴 적이 있다. 처음엔 고사리가 눈에 띄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런데 고사리 하나를 꺽고 나자 온 들판에 고사리만 보였다. 풀숲 사이에 숨어 있든 돌 사이로 비껴 자라든 고사리만 돋을새김처럼 눈에 띄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생략돼는 신비는 덤이었다.

‘야생의 위로’를 쓴 에마 미첼은 이런 현상을 채집 황홀이라 말한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 돼 일시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할 때마다 뇌 안의 보상작용이 촉진되고 그래서 인류에게 채집이 습관화 됐다고 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행복이라는 감정과 연결되는 호르몬이다. 운신이 힘든 시골 노인들도 봄만 되면 고사리 채집에 열을 올린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연신 손사래 치며 고사리 꺾기에 여념이 없다. 그건 분명 노동의 고통이 아니라 채집가의 희열에 찬 표정이며 말투다. 고사리 채집이 끝나면 데치고 말리는 과정이 남아있지만 즐거운 노동의 연속이다. 채집에 황홀이라는 감정이 섞여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 짜릿한 성취감까지 맛보는 노동의 황홀이야 말로 인류를 번성케 한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봄만 되면 노모가 고사리 따러 가자고 채근한다는 지인의 푸념마저 이 계절엔 싱그럽다.

채집은 주로 자연 상태의 동식물이나 곤충, 광석 등을 찾아 모으는 행위이다. 자연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다. 에마 미첼은 자연에서 우리가 얻는 위로는 상상 이상이라 말한다. 자연은 인간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시나브로 스며든다. 작위성 없이 풍경과 햇살과 바람으로 눈 맞춤한다. 때문에 심신이 쇠약할 땐 약을 처방하듯 자연을 찾아 나설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진통과 항우울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도심의 범람으로 지친 사람들이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긴 자동차 행렬을 이룬다. 역설적이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채집의 기쁨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다양한 수집취미로 탈바꿈했다.

문방구, 그림, 기념 자석, 엽서, 립스틱, 심지어 양말까지 다양하다. 수집은 그 자체로 기쁨과 만족의 행위라는 점에서 채집 황홀과 연결된다. 나도 향수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한 병 두 병 모으다 전 세계 향수의 고향인 남프랑스의 그라스를 알게 됐다. 향수 원료가 모이고 세계로 흩어지는 성지인 셈이다. 꼭 한번 가보고 싶어 별렀는데 이번에 기회가 됐다. 강렬한 햇빛아래 야생화가 흐드러진 그곳이 눈에 선하다. 그라스에서 맛보는 채집 황홀, 생각만 해도 빠담빠담(두근두근)이다.                    


여시아문 칼럼(불교신문)


고훈실 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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