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슬라 (Goslar)
여행은 어쨌든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그렇다. 그것이 단 하루의 여행이든 아니면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여행이든 설렘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릴 적 봄 소풍 갈 날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며칠 전부터 새로 산 운동화를 꼭 껴안고 밤잠을 설쳤던 기억도 있지 않은가.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늘 그런 설렘이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모든 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여행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사실 대단한 호기심의 발로이자 모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설렘을 안고 보덴베르더에서 '동화 가도'를 따라 곧장 남쪽으로 달려 도착한 곳은 하르츠 산지 기슭에 위치한 중세도시 고슬라였다. 사실 이곳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북쪽의 보물이라는 여행안내서의 카피에 홀려 부득부득 내가 우겨대서 들르게 된 곳이다.
사실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끼니를 캠핑카 안에서 해결하느라 많이 피곤했던 우리는 오랜만에 레스토랑에 들어가 멋진 저녁 한 끼를 하자는 데 의기투합, 일단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워두고 황제 광장을 지나 15세기 당시의 건물이라는 고슬라 시청사 쪽으로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왜 시청사였냐고? 그곳이 여행 책자에 나온 가장 맛있고 그럴듯한 레스토랑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배가 고파지자 없는 돈에 이거 먹자! 저거 먹자! 갑자기 말들이 많아졌다. 도대체가 독일 쪽엔 피시 & 칩도 없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반드시 베스트를 먹어야겠다며 메뉴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까지. 저녁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 즈음, 황제 광장 건너편 쪽에서 누가 우릴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의 손짓을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떤 식당으로 마법처럼 이끌려 들어갔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카타지나 칼리노프스키 (Katarzyna). 폴란드계의 스무 살 난 여자아이였다. (지금은 정확하게 35세가 되었을 ^^;) 이 부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가 광장에서 식당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가 이리저리 식당을 기웃거리고 있는 우릴 만난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식당이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이거 믿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삐끼라는 삐끼에 다 혀를 내 둘러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여간해선 내키지 않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인연이라고 다들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말 그대로 우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어쨌거나 그녀를 따라 자기 말로 맛도 최고요, 서비스도 최고라고 우기는 고슬라 뒷골목 헥센 자우버(Hexenzauber)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유럽의 여느 레스토랑처럼 조용하지만 은은한 조명이 멋들어진 헥센 자우버는 저녁 식사를 즐기는 이들이 간간이 보이는, 일단은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그녀의 추천으로 우린 감자와 베이컨으로 만든 메뉴를 시켰다. 독일 음식치곤 비교적 만족스러워서 제법인 걸 했으니 음식은 대충 통과된 셈..... 게다가 맛있게 식사를 하며 맥주까지 곁들이자 우린 금방 자연스럽게 카타지나와 이런저런 사람 사는 얘기를 하게 되었다.
부모를 따라 폴란드에 갔다가 7년 전인 13살 때 다시 독일 고슬라로 돌아왔다는 카타지나는 역시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며 캠핑카로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가 피로한 여행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준 탓일까?
고슬라의 밤은 점점 깊어져 시간은 이미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의 대화중에서 그녀가 말한 것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건 당시 독일 정부가 취하고 있는 복지, 실업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여행, 섹스, 마리화나, 동성애 등 하고 많은 얘기 중에 하필이면 우리가 왜 그런 딱딱한 얘기를 꺼냈는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독일 젊은 애들도 이젠 일하는 것보단 노는 걸 더 좋아한단다. 실업과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으니 뭐 당연한 거 아니겠나. 아마 나래도 그랬을 것이다.
그럭저럭 대화를 하는 중에 얼큰하게 술이 오르고 자정은 우리에겐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겐 초저녁이었나 보다. 카타지나는 근처에 친구가 있다며 합석해서 한 잔 더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아싸! 그래 좋아... 술도 한 잔 했겠다. 캠핑카 가봐야 놈 시키끼리 이 밤중에 뭐 할 일 있냐. 그러자 그냥 서로 쳐다보고 OK를 남발한다!
그렇게 우린 고슬라에서 오랜만에 주방장이 만들어 주는 공식 식사를 마치고 시내에 위치한 괴바 (K bar)라는 조그만 클럽을 찾았다. 바에 들어가 포켓볼도 한 번 치고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인터넷으로 이-메일도 보내고 나니 유럽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라마 모자를 쓴 카타지나의 친구가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사벨 괴블(Isabell Gobl). 내 눈엔 좀 더 늙어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21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소룡 복장을 하고 있던 괴바의 바텐더가 고개를 떨구며 꾸벅꾸벅 졸 때까지 우린 서로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암스테르담 이야기를 꺼냈더니 카타지나는 의외로 자신 역시 한때는 지독하게 약물에 의지했었다고 털어놓는다. 독일 북부에서도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는 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으니 다들 자연스럽게 접하나 보군~ 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니 사춘기 때 친구들과 배운 약을 끊기 위해 많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떠냐? 너희는 뭘로 사춘기 방황을 때우냐며 묻는다.
“우리? 우린 두들겨 맞는 걸로 사춘기를 때우지. 어릴 때는 부모한테 맞지. 학창 시절에는 폭력교사한테 맞지. 사춘기 때는 온몸에 문신한 친구들한테 맞지. 나이 들어선 못난 자식한테 뒤통수 얻어맞고 나서야 인생을 깨닫지”
내 농담이 너무 심했나? 카타지나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기사 얘들한테 우리나라의 '효'라는 단어를 설명하기도 대강 난감하길래 그냥 우리나라도 복지정책이 가정적으로 잘 되어 있다고 짧게 얘기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얘기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난 당시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전혀 몰랐다. 왜냐면 원천징수 알바로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술도 떨어지고 밤이 늦어 그들과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캠핑카로 돌아오면서 우리끼리 나눈 얘기 중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여행이란 늘 ‘새로운’ 어떤 만남과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또 한 번의 확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진 촬영을 위해 고슬라의 천년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했다. 그러자 왜 유네스코가 이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는지 알만한 풍경들이 속속 드러났다. 중세의 성곽과 아름다운 목조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독일 니더작센주의 고도(古都) 고슬라는 세계 최대의 구리, 납, 아연의 매장량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 광산은 1988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광산박물관이 이곳에 자리 잡아 관광객을 맞이하면서 광산에서 관광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바뀌었다.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
'옛날 옛날, 광부들은 수천 미터 지하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집까지 가는 왕복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갱도에서 잠을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자 광산 주인은 광부들에게 매일 집에 가서 잠을 자라는 명령을 내렸다. 광부들은 이후 매일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곧 큰 문제가 터졌다. 광부의 부인들이 광산주인에게 호소 편지를 보냈는데, 제발 남편이 매일 집에 들어오게 하지 말아달라는 이상한 호소문이었던 것이다. 이유인즉슨, 광부들이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와 '시꺼멓게 된 상태' 그대로 침대에서 자다 보니 부인들의 잡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엔 샤워를 비롯해서 빨래 역시 비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매일 침대 커버를 빨고 집을 청소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담스런 생활이었던 것이다. 광산 주인은 해결책을 고심하다가 광산에 대형 샤워실을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을 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광부들은 매일 저녁 샤워를 하고 깨끗한 상태로 아내들이 반기는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아주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걷는 나의 아침 산보는 고슬라 시내의 골목들과 무척 어울려 보였다. 슬로시티가 된 옛 광산도시에 돈벌이가 시원찮은 슬로 가장이 할 일이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중세의 유럽 골목을 탐문하듯이 걷고 있다. 이런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오로지 나의 결심에 의해서 움직이는 맘대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고슬라의 골목길 역시 대부분 옛날 마차가 다녔던 길로 좁고 심지어 대부분이 일방통행이다.
게다가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면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들을 따라 2-3층의 집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붙어 늘어서 있다. 그 촉촉한 골목 속을 걷다 보니 문득 지난밤에 만났던 낯선 이방인 카타지나와 이사벨의 여운이 다시금 조금씩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마지막 일방통행 골목을 돌아 나오자 캠핑카를 세워 놓았던 카이저 플라츠 광장 쪽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향과 달콤한 바케트 내음이 나를 힘차게 부르고 있다.
“어이~친구! 빨리 와서 아침 묵으래~~ 이”
Damotori's travel notes
창문 속에 숨은 온기
캠핑카를 타고 유럽을 달리면서 형광등이 있는 집 창문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다 불그레한 백열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있는 사람들.... 온화하고 푸근하며 마치 내 집인 양 불쑥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생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사무실 같은 형광등을 켜 놓고 매일같이 TV를 들여다보고 있던 나. 이제 비로소 그 불빛의 차이를 조금 알 것 같다. 마치 촛불과 혁명의 동질적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그 중차대한 차이를 깨우치게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