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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Aug 16. 2018

<공작> 그저 재밌게만 볼 수 없었다

공작 / 2018, 윤성빈 감독

철 이른 영화 리뷰


이 영화감상 게시판은 말 그대로 철 지난 영화를 리뷰하는 곳이다. 개봉 이후 한 참의 세월이 지나 생명력이 사라지고, 이제는 기억에서 잊힌 영화 중에서 그래도 한 번쯤 더 음미해 볼 만한 영화를 리뷰해서 '사라진 영화촉'을 되살리는 무비스트 제세동기란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영화 '공작'은 뜬금없는 리뷰다. 지금 활발하게 개봉하고 있는 신상 작품이기 때문이다.   

 


윤성빈 감독의 영화 <공작>은 8월 15일 현재 개봉 8일째로 누적 관객수 300만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굳히기에 돌입했다.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천만 관객의 교두보를 돌파하리라 생각된다. 영화 흥행의 이유는 당연히 관객들의 공감이다. 관객들이란 시간이 남아돌아도 재미없는 영화를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 내가 몇 년만인지도 모르게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게 된 이유 또한 그러한 흥행의 이유를 직접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른 리뷰어 덕에 지겹게 떠벌려지고 있으므로 세세하게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도 있고, 스포일러도 좀 있어서 쉽게 나불대기가 쉽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궁금하시면 그냥 영화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이 영화가 왜 이 시점에 개봉이 되었는지가 참으로 묘하게 다가오기에 나는 그만 영화를 보다가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다.

공작, 괴멸되지 않는 바이러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이 열연한 안기부 공작원 '박석영'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 흔한 액션 하나 등장하지 않는 스토리 전개 방식도 사건 진행의 실화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객들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허겁지겁 극 중 캐릭터들에게 자신의 시선을 몰입해야 했다. 관객이 그럴수록 배우들의 연기는 몰입의 강도를 더욱 옥죄며 엔딩까지 살얼음을 걷는듯한 긴장감을 즐길 수 있었다. 영화가 주는 내레이션만 따라가도 흥미만점의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윤종빈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작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이미 그 독특한 맛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공작>의 윤종빈 감독


하지만 전작에는 없는 중요한 메시지가 이 영화 속에는 존재한다. 영화 '스노든'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국민의 판단에 맡기려는 겁니다. 내가 잘못된 건지, 국가가 잘못된 건지"


올리버 스톤이 만든 이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의 사생활과 정보를 취급하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경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내부 고발 시스템이 가동된 사례이다. 미국에서는 JFK 사망 이후 당시 범행과 연관이 있는 군수산업 카르텔이 지금의 권력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아직도 무성하다. 심지어 트럼프 이후 백악관과 CIA 간의 소리 없는 전쟁도 영화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이런 소재는 실화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미묘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영화적 소재로서 매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작>이란 영화 속 박석영은 내부고발자가 아니다. 그는 이 사건의 핵심인 북풍과 관련된 공작원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북핵 프로젝트로 장기간 공을 쌓아가던 일명 죽돌이 스파이였다. 공작원이란 늘 상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 상부의 명령은 때로는 그의 기존 활동과 무관하게 내려질 수도 있다. 정치적인 공작 명령에 그는 고뇌한다. 그리고 결국 모험을 택한다. 이러한 과정은 물론 영화적인 장치로 보이지만, 본래 북한에서의 CF 광고 사업을 통해 북핵 관련 파일을 입수하고자 했던 그의 기존 활동이 무시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이 영화의 정점이 시작된다. 우리 시대 '공작'이란 누군가가 권력유지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누구로부터 어떤 명령이 하달되어도 이상한 조직체계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관 주위를 돌아본다. 우리는 지금 이 영화를 편하고 스릴 있게 즐기고 있지만, 어디에선가 누구는 고문으로 간첩활동을 억지로 불고 있을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기획탈북으로 뜬금없이 엉뚱한 나라에 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 그리고 누군가는 군복을 입고 별을 단 채 지나간 영화를 꿈꾸며 전국 지도 위에서 특전사와 탱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란 이 시점. 나는 영화관에 앉아 있고, 지나간 첩보물을 스릴 있게 즐기고 있다. 나는 안전하다. 과연 안전할까?  


엔딩이 아쉬운 이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북풍사건의 시점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먼 과거가 아니다. 아주 가까운 시절에 우리에게 있었던 일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할 당시의 진상을 고발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건들이 마치 시효가 지난 사건파일처럼 박제가 되어버려 내성이 떨어진 역사로 간주하게 만드는 파급력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런 내밀한 사건을 고발하거나 혹은 들춰내거나 해주기 전까지는 그저 영화관 안에 앉아 팝콘에 콜라를 먹으며 안전하게 삶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실제 이런 시대에 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흑금성'이라는 헤드라인을 신문기사에서 언듯 보기는 했어도 그것이 나에게 도달할 '나비효과'는 관심조차 없었다.



영화는 당시 북풍조작이 성공하지 못한 결정적 요인에 주인공을 올려놓음으로써 영화적 완성도를 해결하고 있다. 물론 그게 진실인지 어쩐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영화의 엔딩이 주로 이 부분에 맞춰져 있음은 조금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가 조금은 철 지난 신파로 흐르지 않고, 세월이 지난 이후의 장면을 삭제하고 임팩트 있게 끝났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러한 국가기관의 비정상적 행위들과 위기의식을 리얼하고도 절실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여운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냥 재밌다고 웃어넘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내 나는 내가 사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면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공작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에서 권력은 존재하고 기득권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공작은 그래서 정치적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멸종되지 않는 바이러스다. 언제든 부패한 권력이 다시 살아나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누구든 박석영(박서채)이 될 수 있는 나라. 그 대한민국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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