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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Oct 14. 2018

아름다운 핏빛 꽃의 향연 <요시와라 요녀이야기>

<요시와라의 요녀 이야기. 1960_우치다 토무 감독>

<요시와라의 요녀 이야기. 1960_우치다 토무 감독>

일본의 에도막부 시대부터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진 전설적인 유곽에 관한 이야기들은 언제 보고 들어도 흥미롭다. (지금은 절대 다시 가볼 수 없기에ㅠㅠ). 막부의 수도였던 에도 주변에는 막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명한 유곽(공창)이 두 개나 있었는데, 고급지면서도 향락과 형식이 엄격하며, 존재감 넘치는 고급 기생 ‘타유’가 존재했던 요시와라 유곽과 에도의 4대 문 중 하나였던 시나가와에 존재했던 서민중심 유곽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우치다 토무 감독의 1960년도 작품인 이 영화의 무대는 당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던 에도의 고급유곽인 요시와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나가와 유곽을 배경으로 <전 일본 10대 영화 5위>를 마크한 1957년 개봉작 카와시마 유조 감독의 「막말 태양전」이 코믹함과 재기 발랄함을 풍자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뭔가 비장미와 은유가 철철 넘쳐흐른다.    

  


줄거리는 별게 없다. 출생에서부터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지로자에몬은 부유한 방직공장 주인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얼굴을 뒤덮은 흉측한 반점 탓에 신붓감 찾기에 번번이 실패하자 크게 상심하고 요시와라 유곽을 찾는다. 어느 날 유일하게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매춘부 다마츠루를 만나 순정을 바치지만, 그녀는 그를 미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한다. 결국 그녀의 야망이 완성되려는 찰나 요시와라 유곽은 남자의 복수로 피범벅이 되는데.       

눈이 멀고, 인생 탕진이 즐비했다는 ‘요시와라’는 어떤 곳이었나?     


영화를 리뷰하면서 계속 유곽 얘기를 하는 것은 당치도 않지만, 변명하자면 이 영화의 볼거리 절반이 어차피 유곽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시간을 마구 거슬러 올라가 나도 질펀하게 거기서 한판 놀아보고 싶을 정도였다고 나 할까. 물론 요시와라는 [막말 태양전]의 주인공 사헤이지처럼 시나가와 유곽에서 맘껏 놀면서, 생떼도 부리고, 버티고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겠지만, 고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룻밤 질펀하게 스트레스를 풀기엔 부족함이 없었을 듯하다.        


일본에는 일찍이 유곽가라 불리던 장소가 각 도도부현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엔 유녀들이 있고, 남성들이 매춘을 하는 기루(색시 집)가 줄지어 거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일본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던 곳이 바로 현재 도쿄도 다이토구 센조쿠 4쵸메에 있었던 '요시와라 유곽'이다. 요시와라 유곽이 에도에 탄생한 것이 1617년 정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년 전에 만들어져 거듭된 화재와 관동대지진, 매춘 금지법 등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가며 지금은 약 140개의 점포가 줄지어 있는 소프 거리로 남아있다.     



요시와라 유곽의 탄생 배경에는 시즈오카 현이 관계되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 초기 슨푸성(현 시즈오카)을 축성하고, 조카마치(영주가 산성을 중심으로 발달된 마을)가 형성되었는데 그때 생긴 유곽이 니조쵸 유곽이다. 이 유곽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타카죠(직속 매부리)가 만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곽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성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장소에 만들어졌다. 이후 이에야스가 슨푸에서 에도로 옮겨 본격적으로 에도 막부를 열자, 슨푸의 니조쵸 유곽 중 일부가 에도로 이동한 것이 요시와라의 원조가 된 것이다. 


당시 에도는 사실 아무것도 없어서 당장 먹는 것이나 생활하는 모든 것이 간사이(교토, 오사카) 지방의 물품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에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들도 더러 있었는데 바로 ‘니기리즈시’라고 하는 일명 손으로 잡아 만든 스시초밥이 그것이다. 


특히 간토에서 간장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에도 풍 패스트푸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스시와 덴푸라가 그 정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도는 쇼군이 있는 무사의 도시여서 참근교대를 하던 수많은 다이묘들의 식솔들이 무사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형식을 무척이나 따지는 고답스런 도시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유로왔던 니조초 유곽이 에도로 와서 형식적이고 고급스럽게 변한 건 그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나가와처럼 에도의 현관문을 담당하고 있던 동네는 무사들보다 죠닌(장사치)이나 역참꾼들이 주로 이용하였기에 후일에도 다소 규율이 좀 헐거운 서민적 유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시골의 어리숙한 부자를 꼬드겨 창녀촌 출신에서 일순간 요시와라 최고급 기생인 ‘타유’로 승전하려는 계획이 등장하는데 타유는 고급 유녀로 요시하라에서도 몇 안 되는 인원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타유는 18세기 중순에 요시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타유 아래로는 호레키 무렵(18세기 중순)에 자취를 감춘 코시, 산차, 손님방을 따로 지니고 있던 자시키모치라는 유녀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엔 타유가 짱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찻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유녀인 요비다시가 있었는데 이들을 오이란이라고 칭했다. 이들보다 하위의 유녀는 오이란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럼 이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게이샤와 뭐가 다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 게이샤는 예술을 위해 서비스를 하는 여성의 직업이고, 오이란(타유 및 유녀)은 엄연히 유곽에서 성매매를 하는 고급 유녀를 지칭한다. 일부 타락한 게이샤를 제외하고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으며, 자부심 있는 게이샤들은 자신의 연인과 관계를 가져도 금전을 받거나 바라는 일이 없었다. 


특히 에도 요시와라의 게이샤들은 아예 남자와 육체관계를 갖지 않고 예술에만 정진하는 고고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물론 고급 유녀인 오이란 또한 풍부한 교양과 지적 능력은 물론이고 예술적 기질 또한 풍부했다. 아렇게 보면 일단 게이샤와 오이란은 태생부터가 다른 업종으로 보면 될듯하다.      


영화 제목을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숨은 반전이 보인다      


이 영화의 일본어 원제는 <요도 이야기-꽃의 요시와라 100인 베기>이다. 영어 제목은 'Hero Of The Red Light District(홍등가의 영웅)'이다. 또 다른 영어 제목은 ‘Killing In Yoshiwara’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제목은 ’ 요시와라의 요녀 이야기‘이다. 뭔 제목이 이렇게 다른 의미들이 많은 것일까?      

 


먼저 영어 제목을 보자. ‘홍등가의 영웅’이나 ‘요시와라의 살인극’ 등은 다분히 에도시대 당시 요시와라 유곽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전형적인 광고 제목으로 읽힌다. 단편적 에피소드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영화 [막말 태양전]에서 보면 요시와라 유곽에서 일어난 다양한 우화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식 만담의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시골 부자를 놀려먹는 유곽녀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다음 소재는 황망하게도 지조를 지키며 돈을 벌어 자신의 남자에게로 돌아가는 유곽녀의 이야기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영어 제목은 별 반전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 요시와라 유곽의 대문 앞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살인극 퍼포먼스에 모든 영화적 중심을 맞추고 있는 듯한 제목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제목을 보자. ‘요시와라의 요녀 이야기’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영화 제목쯤 되시겠다. 요시와라에 이런 요녀가 있었다는 말로 끝이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우화스럽고 복잡 미묘한 영화를 한 칼에 정리하셨다. 흥미만점 우화를 전설의 고향, 그것도 시리즈도 아닌 단편 제목으로 둔갑시켰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이지 않으니 갑갑한 느낌마저 든다.      



요점은 본 영화의 모국인 일본어 제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요도 이야기-꽃의 요시와라 100인 베기>는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진 문장이 등장한다. 요도, 꽃의 요시와라, 100인 베기이다. 이 영화에서 이 세 가지의 뜻을 알아차린다면 이 영화의 가치는 20년 전 사놓은 삼성전자 주식쯤으로 변모하게 된다.        


원제의 '요도(妖刀)'는 말 그대로 요사스러운 검이란 뜻으로 흔히 ‘무라마사’라는 일본식 명검을 뜻한다. 심지어 이 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친과 조부 등을 죽인 칼이다. 주인공 지로자에몬이 버려질 때 누군가가 같이 보자기에 넣었던 칼이다. 그러니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나중에 돈이 궁해지자 이 칼을 팔러 에도로 향한다. 


그런데 검 매매상들이 이 칼을 구매하지 않는다. 에도 막부시대에 대체 어떤 미친놈이 토쿠가와의 부친과 조부를 죽인 칼을 살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그 칼은 다시 주인공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결국 마지막 살인극에 장대하게 100명의 행렬을 마구 베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쯤 되면 이 칼과 영화 제목과 그리고 유곽과 도쿠가와의 관계가 뭔가 얽히고설키는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보세요, 근데 이 영화에서 ‘무라마사’는 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무라마사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15c말~16c말)에 걸쳐 이세에 살던 도장의 이름이자 그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일본도를 의미한다. 초대부터 3대까지 도공 무라마사는 칼뿐만 아니라 단도나 창 등 많은 무기를 만들었다. 무라마사의 특징은 칼 표면에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곡선 모양인 ‘오노타레바’ 문양이 새겨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무라마사의 칼이 도쿠가 와가에겐 저주의 칼이라는 사실이다. 어째서 무라마사는 ‘요도’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그 내력은 도쿠가와가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할아버지 마츠다이라 기요야스는 1535년 부하 아베야시치로가 일도양단으로 휘두른 센지무라마사에 베어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아버지 마츠다이라 히로타다는 1545년 측근 이와마즈 하치야에게 허벅지를 잘렸는데, 당시 사용된 검이 역시 단도로 제작된 무라마사였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아들인 노부야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의심을 받아 할복했을 때 옆에서 목을 쳐주는 사람이 사용했던 검 역시 무라마사였다. 



이 정도면 도쿠가와 가문에서 무라마사는 쳐 죽여도 시원찮을 저주의 검인 셈이다. 그 때문에 심하게 불길함을 느낀 이에야스가 자기 진영에 있는 무라마사를 전부 모아서 폐기 처분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무라마사가 요도라는 별칭을 얻게 된 시작이 되었다.      


당대 권력자가 무라마사를 죄다 없애라고 하자 토쿠가와의 후다이 다이묘나 측근들이 한결 같이 무라마사를 차고 다니기를 꺼려했다. 그러자 막부로부터 공연한 의심을 살까 염려한 도자마다이묘들도 이에 동참했다. 결국 무라마사는 도쿠가와 정권하에서 금기의 아이콘이 된다. 하지만 무라마사의 진가를 알아보는 자들은 무라마사를 '마사무네' 혹은 다른 이름으로 고쳐서 새기거나 아예 무명의 일본도처럼 이름을 지워버리고 소지했다. 만약 걸린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무라마사를 소지하고 있다가 걸리면 막부에 대한 반역 혐의로 할복을 당했던 시대였다. 


요도(妖刀) '무라마사 (村正)'                  


이 영화에서 주인공 지로자에몬과 함께 버려진 검은 무라마사라고 서간에 적혀있지만 정작 칼에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무명 검이었다. 그런데 에도의 무기상들은 모두 이 검을 보고 진검 무라마사인지를 단번에 알았으며 심지어 막부에 걸릴까 무서워서 구매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막부의 지나친 두려움이 무라마사의 전설을 널리 퍼뜨리는데 한몫을 하게 되고, 급기야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변질되어 어느새 소유자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요도, 요검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세간의 인식은 메이지 유신 당시 막부에 대한 반역의 상징이 되었으며, 막부를 타도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무라마사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실제로 무라마사는 크기가 작은 칼이다. 전쟁터에서 쓰는 칼이 아니라 야습이나 암살에 사용하기에 최적화된 무기였다.     


결론적으로 아이와 함께 버려진 반역의 칼. 그 칼로 인해 아이는 생명을 구하지만 도쿠가와막부의 시대에 살인극을 벌이는 처참한 도구로 다시 등장한다. 요시와라는 어떻게든 성실하게 살아보려는 시골의 포목점 주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지옥불 요지경으로 다가왔다. 지로자에몬에게 요시와라는 모든 세상의 부조리가 가득한 끔찍한 욕정의 도가니였을 것이다. 그는 진실한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의심치 않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를 멍청하게 속기만 하는 시골 졸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세상을 향해 그는 딱 한번 눈을 뒤집고 항거한다. 그토록 성실하고 순했던 주인공이 시대의 반역자이자 희생양이 되어 흩날리는 벚꽃의 세례 속에서 무라마사의 예리한 칼을 모두에게 겨누고 욕정의 상징인 요시와라를 온통 피바다로 물들게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속고 속이고, 살리고 죽이는 파렴치한 세태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풍자적으로 알리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요도 이야기-꽃의 요시와라 100인 베기> 이 영화는 세상만사 풍자로 가득 차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 속에 잠겨있는 요도의 검 무라마사가 혹시 잠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슬쩍 가슴을 만져보게 된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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