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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Nov 27. 2018

'훌륭함'은 반드시 숨어있다? <더 매그니피센트 나인>

더 매그니피센트 나인 (The Magnificent Nine, 2016)

흥미로운 영화일세~!


단 한 편의 영화로 일본문화의 총체를 담아냈다. 실제 일본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보지 못하는 운명에 있는 나에게는 책 한 권이나 강의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살펴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더 매그니피센트 나인 (The Magnificent Nine, 2016)_나카무라 요시히로


영화의 배경은 에도시대 메이와 10년 (1772년) 센다이 번의 다테 3대가 영주를 하던 시대, 역참 마을 요시오카의 실제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에는 조정의 물건을 이송하는 역참 역할을 당연하게 통과 마을의 돈(인부)으로 대신해야 했는데 이게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으며, 이로 인해 생계가 빈곤해진 가계들이 야반도주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궁리를 시작했는데, 그 아이디어가 바로 돈이 궁한 조정에 현찰을 헌납해 이자를 받아 역참 공역을 대신하면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조정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는 것. 백성들의 돈을 받고 이자를 주는 모양새가 여간해선 고금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제안은 눈물겨운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 두 주인공 아베 사다오와 에이타


영화 줄거리는 이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일본의 숨겨진 정서가 거의 모두 등장한다. 첫째는 '쓰미마센 (すみません)'이다. 이 말은 일본에서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들어있다. 


내가 너에게 되갚을 일이 아직 있을 정도로 뭔가 큰 혜택을 입거나 준 듯한 깍듯한 모양새다. 일본의 대갚음 문화는 은혜를 반드시 갚거나 원한을 반드시 복수한다는 개념이 충만하다. 


쓸데없는 얘기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이런 개념을 넘어서서 유명해진 영화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이런 정서는 일본의 선물 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 이론은 명징하게 등장한다. '진나이'라고 하는 자린고비 사채업자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쓰미마센'의 현신으로 등장하는 진나이와 목수 츄베이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복선을 보면, 마을이 어려워 야반도주를 하는 목수 일가족을 가로막은 사채업자 진나이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 지금 어디를 가는가? 당신은 나의 돈을 빌렸었지?" 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다가 이 일화가 잊힐만한 영화의 중간에 7년 전 사망한 진나이 집의 담벼락을 타 넘다 걸린 사나이가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츄베이라는 목수였다. 그의 반전은 일본의 '쓰미마센' 문화를 대변한다. 당시 진나이가 도망가는 그에게 재기의 돈을 몰래 마련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목수가 그 돈을 갚으려고 월담까지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진나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한탄한다. 주인공의 아버지이기도 한 진나이와 목수는 이렇게 영화 속에서 일본의 대갚음 문화를 현시하는 상징이 된다. 


마을사람들의 미담에 감복한 다테 3대 영주가 직접 마을 찾아와 술도가의 당호를 내리는 장면


둘째는 일본인들만의 속마음 태도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표현해내야 하는 복잡한 정치술. 에도시대 당시 대중은 대중대로 조정을 대하는 태도가 있고, 관료는 관료대로 대중을 대하는 태도가 있기 마련이어서, 이러한 태도는 에도바쿠후 시대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져 온 커다란 일본식 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 잡았다. 


시시콜콜 바쿠후가 일반 서민들의 태도나 문화의 풍습을 지적해온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어도 일상적 생활은 그냥 평온하게 그들 마음대로 한 것이 그 특징적 징후라고 할 것이다. 


두 형제의 아름다운 복선 역시 줄거리의 핵심은 숨어있는 보은이다 ㅠ


이 영화에서도 관료는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처음에는 이를 각하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진나이의 역사를 발견하고 이는 몇십 년간의 스토리텔링이었다는 새로운 탄원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러자 관료는 조정이 엽전을 취급하지 않으니 그 엽전으로 살 수 있는 금 천냥으로 고쳐 쓰면 탄원을 받겠다고 한다. 


이에 기뻐한 주선인이 이를 받아들여 결국 마을 사람들은 시세가 올라간 금을 더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억울한 시추에이션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요 장면은 관료의 부하가 그를 보고 금 천냥으로 바꿔 헌상하라고 고친 것이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료는 말한다.


영화에서 제일 까칠하게 등장하는 재정담당 가로역할의 '마츠다 류헤이'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하지만 그것은 물에 빠져 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그들을 진짜로 물에 빠뜨려 지푸라기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숨어서 배려한다는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마음 씀씀이. 이로써 일본식 숨은 미덕이 완성된다. 이밖에 양자로 들어간 형과 아버지의 가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둘째와의 해우 스토리도 등장하고, 별의별 이야기가 곳곳에서 만담처럼 등장해 일본식 미담의 총체성을 띠는 이야기로 승화한다. 



소바가 우동으로 변신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ㅠㅠㅠ


마치 1987년 발표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구리 료헤이의 일본식 풍담 소설 <한 그릇의 가케소바>를 에도식으로 마주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섣달 그믐날, 돈이 없어 소바 한 그릇을 시켜야 했던 세 식구에게 소바 한 그릇에 3인분을 말아준 주인, 그리고 기어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의사가 되어 돌아와 소바 3인분을 시키고야 마는 가족들. 그들을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숨어있는 주변인들. 거기엔 20년간 비어있던 그 가족만의 테이블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그 테이블을 상징하는 것은 자린고비 진나이의 숨겨진 항아리다.    


영화는 실화처럼 부담감 제로의 훈훈하고도 애틋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문 부제로 쓰인 '더 매그니피센트 나인'은 훌륭한 9인이라는 뜻으로 쓰이듯 한데, 원제가 서부영화의 고전인 '황야의 7인'에서 따온 것이란 생각이 드니 일본의 문화는 정말 맛있는 '돈까츠'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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