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든 멍

프리랜서 출판 번역가, 편집자의 살아가는 이야기

by kotobadesign


나는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머릿속이 꽉 차 있을 때 멍 때리며 머리 비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회사에 다닐 때는 그걸 할 수 없어 정말 힘들었다. 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할 기력이 없었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멍 때릴 기력조차 없었다니.

몸도 힘들었지만 머릿속이 가득 차다 못해 점점 부풀어 오르는 듯한 상태에서는 어떤 것을 비워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그럼 자유로운 몸이 된 요즘은 어떨까?




요 일주일, 자주 어딘가에 앉아서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조계사 뜰에 앉아서 부처님 상을 쳐다보고(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얼마 전 시작한 다도 연습장에서는 물 끓는 주전자를 계속 바라봤으며 어제는 창경궁 안 벤치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하늘을 한동안 쳐다봤다.

그러고 다니는 나를 보면서 내가 많이 지쳐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느끼기에는 몸도 지쳐 있지 않고 머릿속도 그다지 꽉 차 있지 않은데 왜 어딘가 걸터 앉아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난 이미 많이 충분히 쉰 것 같은데 아직도 쉬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몸이 말하고 있는 걸까? 그럼 그동안 제대로 쉬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은 것도 같다.

회사 다닐 때만큼 일이 쏟아졌던 것은 아니지만 계속 일은 하고 있었고 일이 없을 때는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들으러 다니고 경험하러 다녔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는 공백, 여백의 공간이 제대로 쉬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런 시간은 갖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어쩌면 이건 일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니 그런 시간을 가지라는 하나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을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바로 생각해내지 못했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물론 최근 조금 침체기가 있기는 했다) 이상할 노릇이다.

내 안의 확고했던 어떤 생각, 목표가 분명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러니 여기저기, 이것저것에 신경을 쓰고 다니는 것일지도. 내 안의 확고한 생각과 목표가 있으면 다른 어떤 것에 휘둘리지 않고 그 목표를 위한 일들에만 전념하게 되는데 그게 사라진 것 같다.




아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번역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나는 분명 번역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일본어 단어 하나하나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희열을 느끼고 적합한 표현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드디어 딱 맞는 표현을 발견했을 때는 그것만큼 속 시원하고 통쾌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분명 내가 계속 해나가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한 이유도 이것이었으니.

그렇다면 번역서 기획에 대해서는 어떨까? 지금까지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가 있어 그곳이 어떤 책을 많이 내는지 맞춰서 번역서를 기획하고 제안했다면 이제는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을 먼저 기획하고 그것을 여러 출판사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곳만 보지 않고 눈을 넓혀서 여러 곳을 보는 것.

그리고 한 분야의 독자만 보지 않고 여러 분야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번역서를 기획하는 것.

이것은 번역서가 아닌 다른 책을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근차근 어떤 책을 번역하고 싶은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제대로 머릿속을 비우고 그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보자. 그럼 분명 길과 방향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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