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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철 Mar 16. 2022

멋진 신분세탁이란?

공과는 분명하게..

1. 매국노에서 전쟁영웅으로


일제의 관동군 출신 조선인 있다.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했고 일본군에 입대하여 독립군을 잡는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그는 일본군에서 승승장구를 원했지만 8월15일 조선이 광복을 맞는 바람에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일본군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만주에서 조선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상해를 통해서 조선으로 돌아왔다.

일제부역자를 처단하는 북한과 다르게 남한정부는 일제 부역자들을 크게 문제를 삶지 않았고 

관동군 시절의 인맥을 통해 다시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북한의 남로당에 입당하게된다. 그러나 곧 발각 당해 죽을 위기에 처혔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국군내 남도당원들의 명부를 제출하는 대신에 자신은 석방되었다.

다시 군인이 될 수 없었지만 군 행정원으로 군대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는 운좋게 다시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서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한국정부로 부터 무공훈장을 받게 되었다.

규정에 '일제에 부역한 자는 서훈에서 제외한다.' 규정이 없어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에 대한 처벌은 피했고 공에 대한 보상은 받은 성공한 인생이다.



2. 애국자에서 빨갱이로


일제의 조선통치에 반발하는 조선인 있다.

일제에 반발해서 독립군이 되었다. 일제를 무찌를 수 만 있다면 사회주의 세력이던 민주주의 세력이던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었다.


열심히 싸웠지만 일제를 무찌르고 자주 독립을 이룰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제로 부터 독립을 이루웠지만

자주가 아닌 외세의 힘에 의한 것이 었다.


외세에 의해서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졌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독립군으로 일제와 싸운 공에 대한 보상은 없었고 대신 일본순사에서 경찰로 변신한 일제 부역자들에게 붙잡혀 북한의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고역을 치루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 조선인은 월북을 했고 거기서 고위직을 엮임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곧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후 이 조선인은 고위직에서 물러났고 생사를 알길이 없다.


한국에 남아있던 친지들이 이 사람의 서훈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서훈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서훈을 받는데 현행법상 결격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정부 수립에 기여한' 그의 행적의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다. 두 사람 다 공과 과가 있는데 두 사람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왠지 난 1번길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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