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Jun 01. 2023

그래도 사랑이 있다

영화 '차이나타운' 리뷰

마약, 범죄, 폭력의 잔인함, 배신, 치정 등 인간의 어두움을 극대화시키는 누아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은 주인공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조직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상층부의 권력과 연계되었기에 대부분의 누아르 영화는 주인공의 죽음이나 좌절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러기에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개운치 않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이 첫 번째 이유 일 수 있고 두 번째는 우리 사회 상층부의 부패한 모습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에 그려진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일 철없는 나이는 아니지만 감독은 시대의 어두움을 고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더 나은 삶, 지향해야 할 가치를 보여준다. 이것이 누아르 영화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나타운’을 본 이유는 분명하다. 김혜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나이 50살이 넘었으니 여배우로서 전성기는 지났지만 아직도 농염한 연기에 잘 어울리고 섹스어필은 남자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김혜수가 변했다. 이 영화가 몰고 온 가장 큰 화제는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한 그녀의 변신에 있다. 

"영화 속 여성들이 우리가 늘 알아왔던 방식으로 소모되지 않고, 캐릭터 자체로 온전히 남을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세월의 흐름은 그녀를 장식용 캐릭터에서 벗어나 성격배우로 기억되게 하는 데 이것이 연기 변신이다.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그 나이에 걸맞은 자신만의 연기를 꿈꾸는 것을 욕망하는 그녀는 관객이나 대중이 바라는 연기가 아니라 역의 크기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을 꿈꾸는데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당당함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주근깨와 기미를 심어 얼굴을 거칠게 만들었고 어두운 세계에서 생존한 이유를 알 수 있는 하얗게 센 머리와 흔히 말하는 똥배, 그리고 짧고 건조하고 피곤한 듯 한 그녀의 목소리와 억양은 관객들로 하여금 “역시 김혜수야!” 란 탄사를 자아낸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사시미 칼과 함께 피비린내로 시작된다. 

엄마(김혜수)는 일영(김고은)을 죽이기 위해 목에 칼을 내며 

"너 왜 태어났니?”

라고 묻는다. “왜? 태어났는지 그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 질문은 엄마에게 필요 없었다. 그녀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쓸모 있었기 때문이다. 닭모가지를 자르는 것보다 쉽게 상대의 목을 자르고 이자를 갚지 못하는 채무자는 찾아가 살해한 후 장기를 추출하는 것 등의 행동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해내는 잔인함이 이 세계에서 쓸모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엄마가 이 철칙을 깨고 일영을 살려준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비극이 잉태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암시한다.  



탯줄도 완전히 잘리지 않은 채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졌기에 일영이라 불리는 아이가 자라 엄마가 신뢰하는 충직한 부하가 된다. 그러나 악성채무자의 아들인 석현(박보검)을 만나면서 일영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개울물처럼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그녀 못지않게 힘들고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석현은 구김살이 없을 정도로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이다.

돈을 받으러 온 일영에게 석현은 서슴없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그녀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녀의 상처에 거리낌 없이 연고를 발라준다.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일영의 마음이 붉은 노을처럼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은 사치스러운 것이기에 일영은 그 감정 앞에서 당황한다. 석현의 아버지가 잠수 타고 빛을 값을 수 없게 되자 엄마는 일영에게 석현을 작업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일영은 석현이 도피할 수 있도록 프랑스행 비행기 표를 건네주다가 엄마에게 발각되고 만다. 일영이 보는 앞에서 가볍게 석현의 목을 따는 엄마를 보며 절규하지만 일영의 목숨도 위험하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온 엄마와 일영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한 번도 누군가를 향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설사 그런 감정이 있다 할지라도 드러내 놓고 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영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은 엄마와 가족들을 오염시켰고 비극으로 완성된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영을 죽여야 했다. 그것은 조직을 배신한 일영에게 당연히 내려진 형벌이어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몰래 일영을 도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조직의 이인자를 꿈꿨던 치도는 그녀를 죽이려 한다. 이 시도는 빗나갔고 오해한 일영은 엄마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비극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시작되었고 사랑은 가족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일영을 은근히 사랑했던 우곤은 일영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고 일영의 사랑을 갈구했던 홍주는 그녀의 변심을 오해하고 일영을 죽이려다 목숨을 잃는다.

충분히 일영을 죽이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엄마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꺼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양하겠지만 아리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인간의 잔혹함이 화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석현의 밝음은 자기 또래인 인영의 마음속에 한줄기 빛으로 내렸고 그 빛은 엄마를 비롯한 가족의 마음을 인간으로 살도록 만든다. 참혹한 죽음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한준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회복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가족들이기에 그 아픔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배경음악은 차이나타운 OST 중에서 "COIN LOCKER GIRL"입니다

https://youtu.be/Kz6ECgLxRhM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울었다. 심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