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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23. 2024

마흔된 김에 마라톤(5) 달리기, 왜 하세요?

2024년 6월 22일

내 생애 첫 마라톤에 도전한 날이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무언가를 완전히 노베이스로 시작한 것은 마라톤이 처음이었다.

지난 5월,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대로 달리기를 시작했으니까 한달 여 만에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평일에는 헬스장에서 주3회 이상, 주말에는 보라매 공원을 달리며 마라톤을 준비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밝았다.

어제까지 뜨거운 햇빛이 걱정이었는데, 마라톤 당일 아침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후두둑 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더운것 보다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지만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오전 8시까지 대회장소에 도착해야 해서 토요일이었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 준비를 서둘렀다.


러너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

대회장을 가는 내내 약간의 후회와 설렘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너무 힘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커질 때즈음 지하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화려하고 굽이 폭신한 러닝화, 가벼운 복장, 이미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있는 사람들. 우리와 같은 칸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너들이었다.

언젠가부터 러너 복장을 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지애가 생기며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들을 보면 나도 당장 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도파민이 쭉쭉 올라왔다.

어느새 걱정과 후회는 싹 사라지고 두근두근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러너들이 도착해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모두들 들뜨고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회사 동호회 사람들, 러닝크루, 고등학생 러닝클럽 등 어린 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장년층까지 마라톤이야 말로 세대 대 통합의 현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참가번호 [5556] 번호표를 옷에 달면서 새삼 내가 이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이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도대체 저 힘든 달리기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뚱하게 그들을 바라봤을 텐데 내가 이 현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니,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말이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불과 몇 달 후, 아니 하루 뒤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묘미가 아닐까.


힘든데 재미있어!

5, 4, 3, 2, 1, 출발!

내심 자신있게 시작을 했는데 마라톤 코스가 1km 가 지날 즈음 오르막 구간이 나오면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평지로만 달렸던 터라 중간중간 오르막 구간이 나올때마다 종아리가 뻐근하게 올라왔고 숨이 가빠졌다. 함께 참가한 남편은 꽤 여유있게 뛰는 통에 속으로 좀 약이 올랐다.  


설상가상 한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반환점을 도는 시점부터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다리는 무거웠고,  숨은 가쁘고, 어깨도 뻐근했다. 이미 몸은 땀과 비로 다 젖었다. ‘잠깐 달리기를 멈추고 걸을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달렸다.

발가락에 물집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지난 주 달리기 연습 때 엄지발가락에 크게 물집이 살짝 잡혀서 한 주 동안 일부러 자극을 최소화하며 관리했는데, 아마도 그게 다시 올라오는 모양이다. 제발 물집이 터지기 전에 도착하길... 마지막 1km는 물집 생각만 하며 뛰었던 것 같다.


도착 하자마자 메달을 걸고 인증샷을 찍었다. 아침에 머리도 못 감고, 땀도 흘리고, 얼굴에도 잔뜩 열이 올라왔는데, 내 얼굴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보던 러너들의 밝고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겨우 5km를 뛰었지만 끝난 후 뿌듯함은 어마어마했다. 몸은 힘든데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다같이 즐거워했다. 마라톤은 바로 이 맛이구나!

이제 다시 10월 서울레이스를 준비한다. 이번엔 11km다. 벌써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충분히 연습해서 꼭 완주하리라.  

아, 요즘 내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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