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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6. 2024

마흔 된 김에 마라톤(4) 시작하는 이의 고통에 대하여

‘달리기는 동안에는 두 발의 움직임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는다’라고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말했었다. 사실은 다 뻥이다. 달리는 그 순간부터 ‘힘들다’는 생각이 온 정신을 지배한다. ‘힘들다, 그만 뛸까, 잠깐 걸을까, 아니야 좀만 더 참아보자, 아니야 진짜 힘들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무한대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 치의 달리기가 끝나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 달리기의 시작이다.


통증의 시작

달리기를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는 고관절 통증이 동반됐다. 근육 주사를 맞은 것처럼 고관절 부분이 뻐근하게 올라왔다. 달리기 전, 후 스트레칭을 대충 넘긴 탓이다.

예전부터 고관절 부분이 남들보다 뻑뻑하긴 했다. 가끔 다리의 가동범위를 크게 벌려 빠르게 ‘뚝’ 소리를 내는 것도 안 좋은 습관임이 분명하다.

고관절 통증은 생각보다 아파서 잘 풀어주지 않으면 오래 달릴 수 없으니 달리기 전 스트레칭이 필수인 부위다. 다행히 며칠간 집중적으로 스트레칭을 해주니 통증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이후로는 달리기를 하지 않는 날에도 운동 전 고관절 스트레칭을 반드시 해주고 있다. 역시 사람은 아파봐야 정신 차리는 법.


다음으로 찾아온 통중은 종아리였다. 오래 달리기 위해선 발바닥이 닿는 부분이 미드풋이 되어야 한다. 미드풋이란 발 볼로 착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발 볼 중앙이 닿으며 뒤꿈치는 아주 조금 들리는 자세이다. 미드풋 러닝으로 처음 달리면 자세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종아리 근육과 아킬레스건이 당길 수 있어서 근육이 발달되도록 조금씩 거리와 속도를 늘려가야 한다.

미드풋으로 달린 첫날 종아리 땡김이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일주일을 내리 압박스타킹을 신고, 손이 아프도록 주무르고 나서야 조금씩 나아졌다. 자세가 잘못된 건지, 이 정도의 고통이 정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뛸수록 고통의 시간이 일주일에서 3일, 다시 1일로 줄어드는 걸 보니 근육이 발달하는 중이긴 한가보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생각해 보면 어떤 시작이든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 처음 직장인이 되었을 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서툴고 어색했던가. 베개가 다 젖을 때까지 밤새 울던 시간을 지나 어느새 익숙함에 익숙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것이 어색했던 스무 살이 지나고 이 나이쯤 되고 보니 더 이상 성장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잘 아는 것은 더 잘 아는 척, 모르는 것은 몰라도 되는 것처럼 살게 된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말이다.


달리기를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것도 그 처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운동화는 뭘 신어야 하는지,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색하게 뚝딱거릴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런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시작하는 고통 속에는 늘 설렘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나이를 먹으며 내가 잃어버린 것은 ‘설렘’이었다.  


오늘은 보라매 공원으로 저녁 러닝을 할 계획이다. 얼마나 힘들까 생각만으로 설렌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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