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자 회사는 뒤숭숭했다. 작년 실적이 눈앞에 드러나자 대표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고, 그 바람에 존경하던 임원 한 분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동시에 그분이 진행하던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부서와 주요 실장, 팀장들의 자리도 애매해지고 있었다. 그중엔 우리 팀도 포함되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미묘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나도 파도 위 돛단배처럼 출렁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 내 연봉동결 소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곧 희망퇴직 이야기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이직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어차피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연봉을 파격적으로 올린다면 모를까 일하는 곳만 바뀔 뿐 그곳에도 미친년은 존재할 테고, 일은 똑같이 지겨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적응하는데도 거의 2년이 걸렸다. 나이를 먹고 이직을 하니 직원들과 편해지는 것도 힘들었고, 분위기를 익히는 데도 꽤 오래 걸렸다. 버티고 버텨 이제 겨우 다른 부서와의 관계도 편해지고 일도 수월해졌는데 다시 다른 회사에서 그 짓을 반복할 생각을 하니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어디 그뿐인가. 막상 새로운 곳을 알아보려고 하니 10년 차 이상을 뽑으려는 곳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나이쯤이 되면 다들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눌러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면 당차게 퇴사할 용기도,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기도 쉽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뼛속까지 체감하게 된다.
퇴사할 용기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대로 사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회사에 출근해서 적당히 일하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남편과 TV를 보고, 주말이면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그런 소소하고 무난한 일상도 내겐 큰 행복이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데 정말 이대로 살아도 될까? 왜 이렇게 불안하지? “
아직은 내 인생에 멋진 불꽃놀이가 남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직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언제 침몰할지 알 수 없는 배에서는 서서히 물에 잠기느니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