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Oct 03. 2024

마흔에 하는 진로고민이라니

아파트 상가 1층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결국 점포정리 50% 행사를 한다고 써붙였다. 얼마 전까지 붕어빵 기계를 들여놓으며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노렸던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삼십 대 초반까지는 회사를 자주 옮겨 다녔다. 나와 맞지 않는 곳이라면 미련 없이 그만두고 새로운 곳을 찾는데 거침이 없었다. 대리 2~3년 차는 이직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딱 30대 중반까지였다. 서른여덟쯤 되었을 때 문득 내 10년 후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자 나이 마흔 중반이 넘어가면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다. 게다가 전문직도 아닌 마케팅 업계에서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수명은 더 짧았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내가 임원까지 올라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그럼 마흔여덟 이후에는 뭘 먹고살아야 하지?’ 도통 답이 보이지 않아 당시에는 답을 미뤄두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나이까지 진로 고민을 할 줄 몰랐어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5-77년생 임원들과 실장들의 인사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사실상 퇴사 종용이었다. 당장 그만두기엔 대안이 없으니 다들 눈치를 살피며 밀려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몸을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이미 그전부터 팀장급들도 실장 말 한마디에 자리가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사실 언제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전처럼 내려오는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을 짓누른 적이 있을까.


얼마 전 남편 회사에서도 권고사직이 시작되었다. 팀에서 업무 평가를 통해 가장 점수가 낮은 직원이 대상자가 되었다. 그도 40대, 딸 둘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송별회를 하고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온 남편이 “슬슬 다른 데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중얼렸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쓸어주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벌써 노후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 어떡하든 직장에 오래 붙어 있어야겠다는 다짐, 새로운 진로를 계획하고 뭐든 시작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흔 여덟에는 뭘 먹고살아야 하냐는 질문을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어리석게도 마흔 즈음이 되면 저절로 내 직업의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다. 생활의 달인은 못될지언정 20대처럼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비어버린 아파트 상가를 보며 생각한다. 카페를 차릴까, 샌드위치 가게를 할까, 편의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역시 직장인의 종착역이라는 치킨집을 해야 하나. 끝나지 않는 고민과 사투하는 요즘이다.







이전 01화 연봉은 동결, 마흔이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