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장편 영화

by 고유빈

휴민트

액션/스릴러

감독 주연

류승완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줄거리

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자신의 휴민트 작전에서 희생된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그곳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와 접촉한 조 과장은 새로운 휴민트 작전의 정보원으로 그녀를 선택한다.

한편,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해당 사건의 배후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 본 감상평은 작품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독자분들께서는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14번째 장편 영화이자 영화 <베를린>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개봉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시점이라,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한 스포일러는 최대한 삼가고 연출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글을 통해 작품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대칭 프레임

휴민트는 기존 영화들에 비해, 배경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인물 간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유독 대칭 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사건의 무대인 러시아의 건축 양식을 효과적으로 부각하는 동시에, 이국적 정서를 강조한다. 또한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말끔한 대칭은 화면에 일종의 아름다움과 비현실적, 혹은 환상적인 감각을 덧입힌다. 그러나 인물 간의 대립은 그러한 배경의 정서와 달리 복잡하고 뜨거우며, 때로는 애잔하게 북받치는 감정을 공유한다. 차갑고 정제된 대칭 구도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오히려 인물의 감정에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면 전반에 낮은 채도를 적용함으로써, 러시아의 차가운 환경과 그 속에서 타오르는 인물들의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했다. 작품 속 차가운 환경과 그에 따라 피어오르는 인물들의 입김, 그리고 그 속에서 오가는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감정선을 한층 더 깊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명암

작품은 인물의 얼굴을 포착할 때 명암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박건(박정민)의 등장 장면과 황치성(박해준)과 박건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화면을 가르는 강한 명암 대비는 인물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장치로 활용되어 온 영화적 문법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주로 실내조명을 활용해, 같은 공간에 놓인 인물들임에도 서로 다른 정서를 드러낸다. 특히 박건(박정민)의 얼굴은 짙은 그림자에 의해 절반가량 가려지는데, 이는 그가 선과 악의 이분법 속 어느 한쪽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명암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인물의 연기와 함께 명암의 강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처한 심리가 안정된 상태인지 혹은 불안정한 상태인지 비교적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랙 포커스

인물 간의 대사를 통해 형성되는 심리를 포착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효과적인 연출 방식으로 랙 포커스가 있다. 랙 포커스는 장면 속 피사체의 초점을 다른 피사체로 옮기는 촬영 기법으로, 시선의 주도권을 전환하는 동시에 감정의 방향을 드러낸다. 작품 속 박건(박정민)과 채선화(신세경)의 대화 장면에서 이 기법이 두드러지게 사용되는데, 초점이 두 인물 사이를 오갈 때마다 관계의 온도와 미묘한 긴장이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따라서 우리는 초점의 이동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사연이 있음을 파악하고 감정의 결을 감지하게 된다.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이나 전형적인 로맨스 장면이 부재함에도, 그 관계가 짙은 멜로처럼 다가오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는 랙 포커스를 통한 시각적 스토리텔링이 감정을 대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졸브

해당 작품은 컷을 전환하거나 다른 인물의 상태를 제시할 때 디졸브를 과감하게 활용한다. 디졸브는 한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며 다음 장면과 겹쳐지는 편집 기법으로,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비교적 부드럽게 연결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효과를 통해 단순한 공간 이동을 넘어, 동일한 사건을 마주한 인물들의 상반된 심리를 보여준다. 그 결과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대립된 정서가 자연스럽게 대비되며, 감정의 결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일련의 사건을 통해 그려지는 조 과장(조인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미상관

수미상관은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특정 요소를 결말부에 다시 환기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유사한 형태를 이루는 서사 기법이다. 이는 대사, 사건, 혹은 특정 장면의 반복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특정 장면에 수미상관을 적용함으로써, 길고 험난했던 사건의 나날들을 마치 하루 동안 벌어진 일처럼 압축해 놓은 듯하게 만든다. 그 결과, 모든 과정은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비치고, 인물의 고통과 갈등은 어딘가 허무하고 씁쓸한 감정만 남는다. 한편, 수미상관을 통해 이러한 사건이 생의 반복임을 암시한다. 이는 곧 거대한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한 느낌을 드러내며 인물과 서사의 공허함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연출 포인트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바라보면, 류승완 감독이 얼마나 노련한 연출가인지 실감하게 된다. 모든 장면에는 감독의 의도가 세밀하게 스며 있으며, 이는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언뜻 익숙해 보이는 기법들이지만, 이를 서사와 감정의 결에 맞게 정교하게 배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칫하면 과장되거나 어색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영화의 주제 의식과 해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형식과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계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다운 연출의 힘이 드러난다.



잘 지냈소?
(박건)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