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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20. 2020

샌드위치는 헝겊에 싸는 거다

비즈왁스 푸드 랩 사용설명서

호주 유치원 아이들은 점심을 대부분 샌드위치로 먹는다. 처음엔 3살 4살 아이들이 두꺼운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는 걸 보면 그저 신기했다. 그 안에 들어간 거는 별거 아닌 햄과 치즈 그게 다다. 간혹 비트루트나 아보카도 정도가 더해진다. 그런데 우리 반 24명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나면 나면 쓰레기가 거의  나오질 않는다. 고작 요거트 뚜껑 껍질 정도다. 어느 날, 나는 아이들이 천에 둘둘 싸오는 샌드위치 헝겊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는 비닐랩에 싸오는 게 당연한데 이게 무얼까 너무 궁금했다. 슬쩍 가서 어디서 샀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만들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손으로 만져본 느낌은 왁스가 먹여진 톡톡한 질감의 천이었다. 약간의 왁스 향도 났다.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그 왁스 헝겊 위에서 먹고 다 먹은 후 사각으로 접은 후, 다시 런치박스에 넣었다. 쓰레기가 나올 수가 없었다. 샌드위치는 꼼꼼히 싸야 하는 것이니 아무 생각 없이 비닐랩을 훅 뜯어 쓰던 나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호주 엄마들이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비즈왁스 랩이라 부르는 재활용이 가능한 푸드 랩이었다. 호주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거 같았다. 비즈왁스는 밀랍이라고도 부르고, 벌집에서 추출된 동물성 고체의 왁스이다. 천연성분으로 항균작용을 하며, 비누나 화장품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었다. 나도 이 왁스 랩을 만들어 쓰면 집에서 비닐랩을 쓸 기회를 많이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베이에서 검색 끝에 동글동글 잘라진 비즈왁스를 구입했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 굴러다니는 짜투라기 천을 찾았다. 예전에 퀼트를 할 때 모아두었던 예쁜 천들이 나왔다. 물론 천은 100% 면이었다.  적당한 천이 없으면, 남편의 와이셔츠를 잘라서 한다는 사람도 있고, 뭐 아무 면으로 된 천을 쓰면 된다.


천을 적당한 크기(보통 25 x25센티)로 자르고, 그 위에 비즈왁스를 골고루 뿌린다. 오븐에 넣어 일정 시간 녹을 때까지 놔둔 다음 꺼내서 요리 붓으로 모서리 끝까지 골고루 왁스를 발라서 식히면 된다. 여기에 조조바 오일을 바르거나 올리브 오일을 발라도 좋다. 보통 식힐 때는 천이 잘 마르게 베이킹 랙 같은 데에 두거나 옷걸이에 걸어두는 게 좋다! 신기하게 꾸덕꾸덕 마르면서 빠빳해진다. 그다음은 마구 써 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이 비즈왁스 랩을  잘 사용하고 있다. 샌드위치는 물론이고, 작은 빵들, 사과, 아보카도, 남은 야채 그리고 넛트류 등 그리고 비닐랩을 대신해서 많은 곳에 유용하게 쓰고 있다. 물론, 쫀쫀함은 비닐랩을 따를 수 없다. 환경을 생각해 그 정도는 양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더러워지면 물로 휘리릭 닦아서 다시 쓸 수 있고 장장 6개월을 쓸 수 있다니. 이만한 환경지킴이도 없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내 플라스틱 랩은 주방 서랍 어디에 있는지 생각도 안 난다.


투명한 플라스틱 랩의 튼튼함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면, 비즈왁스 랩을 한번 만들어보자. 푸른 지구를 지키는데 단단히 한몫을 할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환경을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거 같다.  


이 왁스 먹은 헝겊, 나만 쓰기 너무 아깝다. 이번 주말엔 맛있는 샌드위치를 여기에 싸서 피크닉을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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