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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28. 2020

보름달 미신

추석이면 보름달, 보름달은 추석 때 제일 볼만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둥근달 하나 크게 차 있는 날에는 왠지 평온하게 소원을 빌어야 할거 같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보름달은 나에게 흔한 추석의 일상이었다. 그 크고 휘엉찬 둥근달, 생각만 해도 풍성하니 벅차오른다.


그런 나의 보름달에 대한 통념을 깨버린 것은 호주에서 추석을 보내면서이다. 여기 추석은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가 주차장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넘어져서 얼굴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눈은 심하게 충혈이 되었고, 코와 왼쪽 뺨은 뼈가 부서진 듯이 너무 아팠다. 엉금엉금 기어가 떨어져 나간 안경을 간신히 줍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동료가 달려왔다. 그 길로 그녀의 차를 얻어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니, 나이가 지긋한 의사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내가 딱한지 조심스레 살펴보더니, 약을 처방해 주면서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보름달이 떠서 재수가 없었나 봐요. 조심하지 그랬어요. 그래도 이렇게 다치면서 광대뼈가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은 건 정말 운이 좋았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광대뼈를 다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 더 세게 내 머리를 치는 한마디가 들렸다. 보. 름. 달. 나는 다시 물었다 “ 보름달이라고요?”라고 말하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보름달이 뜬 다음날 환자가 보통보다 많이 온다며 묘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우리에게 풍요와 복을 비는 보름달이 불운의 상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동양과 서양이 갖고 있는 보름달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다를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믿고 있진 않겠지만, 은근히 보름달에 대한 생각이 불길함를 암시하는 듯한 이미지는 저으기 놀라웠다. 40년 훌쩍 넘게 보름달을 본다고 설레 하고 기다리고 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 후로 오다가다 하늘을 올려 봤을 때 달이 좀 차오른다 싶으면 은근히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 의사의 보름달 얘기는 아니 들은 만 못했다. 나는 그 악운을 씻어 버리기라도 하듯, 얼굴에 난 상처에 열심히 약을 바르면서 이것은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라고 계속 주문을 걸었다. 왜냐하면, 보름달은 원치 않아도 매달 보게 될 테니깐 말이다. 그 후 운이 좋게도 내 상처는 주문이 풀리듯 그리 오래지 않아 회복이 되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보름달을 반신반의하며 보고 살기를 10여 년, 보름달은 한 달에 한 번씩 어김없이 뜬다.  여기의 보름달은 유난히 크고 밝다. 그냥 휘엉차게 내 앞에 떠 있다. 퇴근을 하다가도, 시장을 다녀오다가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약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올려다보지만, 그런 불운의 보름달은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만나질 못했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올려다보면, 그 보름달은 내 갈길을 훤히 비추면서, 나의 미심쩍은 불안을 지워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보름달은 나의 믿음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고 있다.


내가 보는 보름달은 여전히 자꾸만 보고 싶고, 소원도 빌고 싶고 그런 귀한 보름달이다. 나는 토끼가 방아를 찧던 그 순수했던 보름달을 기대하면서 다가오는 그리움 가득한 추석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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