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모드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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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무려 7시간을 들었다. 달리기할 때, 걸을 때, 운전할 때 나누어 들었다. 라디오 드라마 정주행이었다. 성우들이 목소리로 연기했고, 바람소리, 문여는 소리, 발자국소리, 서울역 백색소음, 기쁨과 좌절의 효과음까지 꽉 차있는 첨단의 오디오북이었다.


감동적이거나, 소설의 구조가 감각적이거나 하진 않다. 평범한 문장이다. 편안하게 읽고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작은 편의점을 스쳐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편의점 사장님, 저녁 알바 아저씨, 오전 알바 아줌마, 오후 알바 아가씨, 사장님 아들, 알바 아줌마의 아들, 아저씨 손님, 아가씨 손님, 할머니 손님들의 이야기다. 삶에 주인공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이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다.


한참 중년이지만 상상을 좋아한다. 하루에도 몇 번, 내가 작은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저쪽에서 나를 카메라로 잡겠지. 그럼 내가 어떻게 보일까. 드론으로 위에서 나를 빙그르르 돌면서 나를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내리막 좌회전을 할 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창문으로 흘러나가는 음악이 멋질 것이다. 농가와 논밭 뒤에 어색하게 서 있는 세종시 50층 아파트는 어떻게 보일까. 이런 자뻑모드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주인공일거라고 생각한다. 전원주택 마당에서 골프연습하는 아저씨, 공사하는 인부, 건널목에 서 있는 중년의 여자에게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고 있을까. 무인문방구에서 만난 꼬마 애는 초등학교에서 무슨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써가고 있을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써가고 있는 중이다. 행복한 이야기만 있을 순 없겠지. 그런 이야기는 너무 시시할테니까.


IMG_3379.jpg 세종 지혜의 숲. 오늘 사람이 거의 없다. 평온한 하루.




<오늘 운전하면서 들었던 '어떻게 지내'>

https://youtu.be/77SE-qNqI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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