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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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작가는 시인인데, 나는 산문을 더 좋아한다. 단어와 문장이 가지는 미묘한 차이를 눈 앞에 보여준다. 감정과 느낌의 섬세함을 깨우쳐준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에 새롭게 다가간다. 절반정도 읽다가, 훌쩍 뛰어 에필로그를 읽었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은 왜 놀지를 않는지 이상해 보였고,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들이 노는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 소파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옛 친구는 거의 멀어져가고, 새 친구는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정말 그게 어른의 삶이었다.
내가 조금 더 컸을 때, 나는 어른들이 사랑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피곤해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어른들은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사랑을 고백하지도 않지만, 영화나 텔레비젼 드라마 속의 사랑에는 지나치게 열중했다. 사랑을 관람하는 일로 사랑을 대신하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정말 그게 어른의 삶이었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 221쪽)
김소연 작가의 말이 맞다.
어른이 되니, 친구는 멀어지고, 새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사랑은 커녕 사랑을 관람하는 일도 버겁게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변화때문이 아닐까. 어릴 때 친구는 내 옆의 친구만 친구다. 자라서 친구는 나와 맞는 친구만이 친구다. 어른인 나는 다른 이에게 나를 맞추기 싫다. 누군가를 신경쓰는 게 귀찮다. 그들도 나를 신경쓰지 않으므로, 서로는 서로를 위해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옛친구는 멀어지고, 새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건만, 어느순간 가족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보다 더 어느순간 사랑이라는 느낌마저 희미해져, 가족이라는 단어만 남게 된다. 그리곤 사랑을 관람하는 일에 매달린다. 이것도 변화때문이 아닐까. 내 사랑은 이쯤이면 만족하고, 이 정도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결론이 내려지면 어떠한 변화도 감내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던대로만 하면 된다. 사랑이건, 의무건 나는 하던 그대로면 충분하다. 정작 내게 필요한 건 관람으로 만족하면 된다.
나는 여전히 변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나의 절정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을테니까. 그러니 나는 나의 의지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할 것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는 사귀면 좋겠고, 친구를 사귀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다. 사랑을 관람하지 말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읽고 글로 쓰면서, 내 감정과 나의 변화가 어떻에 움직는지 느끼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