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지만,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2833427279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의 시다. 가장 좋아하는 시다.

약간은 쇳소리나는 허은실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다.


삶에 논리란게 있는가. 살아보니 그런 건 없다.

삶이 예측되던가. 10년 전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10년 역시 가늠조차 안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의 삶이지만,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계속될거라 치부하며, 뻐기고 다녔던 순간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날 생각하게 된다.

겨우 내 몸밖에는 없구나.


어느순간 내 곁에 와 있었던 삶의 억울함과 슬픔을 되새겨 본다.

이유없이 다가왔는데, 되새겨 본들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그저 제자리만 맴돌뿐이다.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일부-




https://youtu.be/jZpYhgreeF0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B%8B%A4%EC%9A%B4%EB%A1%9C%EB%93%9C.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말 그게 어른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