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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Nov 12. 2023

삶에는 체급도 계급장도 없다.

(하프 마라톤, 사이버영토수호 마라톤 대회, 11.12.)

https://blog.naver.com/pyowa/223262673879


지난 달 10월 8일 서울런 하프 마라톤을 뛰었으니, 딱 40일만에 하프를 다시 뛰었다. 아마 지난 달 마라톤을 뛰고 바로 다음 대회를 찾았고, 서울 대회가 있어 신청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지난 달에 뛰었으니 긴장은 되지 않았고, 10월 기록보다 나으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으니 면장갑이 필수였는데, 쓸데없이 땀 닦을 손목밴드만 챙겨갔다. 긴바지를 입거나 반바지에 타이즈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생각없이 반바지로 뛰었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추위로 빨갛게 되었고, 손이 너무 시려워 옷 소매 손가락을 감추고 뛰었다.


출발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2시간 풍선을 열심히 따라 뛰고 있는데, 14km 지점에서 고관절에 통증이 왔다. 허리가 좋지 않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허리에 무리간 것 아닌가. 잠깐 멈추어 옆에 있는 봉을 잡았다. 바로 서 있기 어려웠다. 절룩거리며 옆 벤치에 누웠다. 누워 허리 스트레칭 하며 통증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렸다. 추운 날씨만큼 파란 하늘이 보였다.


10분 정도 있으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목표가 완주로 바뀌었다. 허리에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신발 밑창을 땅에서 가장 작게 올리고, 보폭을 절룩거리는 할아버지 보폭 정도로 좁혔다. 그마저도 내리막은 걸었다. 뒤에서 추월하는 할아버지께서 '고고'하면서 지나가셨다. 70은 훌쩍 넘으신 분이었다. 목표가 '완주'에서, '반드시 완주'로 바뀌었다.


지난 달에 뛸 때는 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와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만이 내 인생의 조각이다'



마라톤에는 다양한 사람이 같이 뛴다. 훈련받은 아마추어, 막운동화에 파카를 입고 뛰는 고등학생, 할아버지,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외국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뛴다. 아무런 규칙도 없다. 정해진 코스를 자기 힘으로 돌아오면 된다. 학력, 재력, 나이, 빈부, 지식, 인맥 같은 건 아무 쓸모가 없다. 


마라톤이란 스포츠에는 체급이 없다. 사실 아무런 조건이 없다. 빨리 결승점에 도착하면 된다. '저 사람은 재능이 있지 않느냐.',  '저 사람은 신체조건이 나보다 유리하다.', '나는 나아기 많지 않느냐' 따위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건 그냥 다 변명이자 투덜거림이다. 


우리는 학력, 자격, 재력, 나이, 빈부, 지식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을 발휘한다면서 학력, 자격, 재력, 나이, 빈부, 지식 뒤에 숨는다. 고3때의 성적을 보여주는 대학을 평생 우려먹으며 산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고 나도 어찌보면 그렇다.


그런데, 점점 체급과 계급장 없어지는 세계가 많아지고 있다. 주식, 부동산, 재테크, 유튜브, 구글 블로그, 인스타그램 마케팅, 스마트스토어, 지식산업센터, 전자책, 구매대행, 유료 SNS 같은 시장엔 계급이 없다. 클릭을 부를 수 있고, 많이 판매할 수 있으면 된다. 마라톤이 결승점에 도착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달리면서, 삶에도 체급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삶에는 아무런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공부할 상황이 아니었어.', '우리집은 형편이 좋지 못했어.', '나도 예전엔 잘나갔어.', '젊었을 땐 빠릿빠릿했었지', '그때 운이 좋지 않았지.' 이런 말들은 푸념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마나한 말같지도 않은 말이다.


요즘 새로운 분야를 도전해보고 있다. 청렴전문강사라는 강의시장에 12월부터 상품으로 등장한다. 워드프레스로 구글애드센스에 도전하고 있다. 모두 시장의 선택만이 있는 곳이다. 능력이나 상품의 질은 그 다음 문제이고, 선택받느냐 그렇지 않느냐만 존재하는 시장이다. 체급과 계급이 없는 시장인 것이다. 


삶은 마라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잊지 말아야겠다. 삶에는 체급도 계급도 없다. 그러니 핑계대지 말고, 부러워만 하지 말자.


삶에는 체급도 계급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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