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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an 02. 2021

복지부동은 아트(Art)다.

공무원이 살아가는 법

복지부동을 숙달하는 훈련병


복지부동(伏地不動)은 군사용어다. 


야간 이동 시 적 조명탄이 터지거나 기습 사격이 있으면 취하는 전술적 행동이다. 반사될 만한 부분은 모두 땅을 향하게 하고 배를 바닥에 붙힌다. 팔다리는 오므려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행동이다. 


적이 왜 조명탄을 터뜨렸는지, 왜 사격이 있었는지, 어디에서 공격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바닥에 엎드린다. 적이 부시럭 소리에 유인 사격을 하는 경우도 있고, 동물이 조명지뢰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적의 의도와 나의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린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적에게 발각되고 총알받이가 될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복지부동이 아니다. 나른한 행위가 아니다. 복지부동은 심각한 고민끝에 결단한 적극적 행동이다. 얼굴은 땅을 향하고 손발을 몸에 붙이고,배와 뒤꿈치까지 땅바닥에 붙인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복지부동이란 얼마나 전술적 행동인가. 군사용어에서 '전술'은 'Art'로 번역된다. 복지부동의 논리구조에는 예술의 향기가 베어 있다.


복지부동은 더이상 군사용어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공무원이란 단어와 훨씬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군인을 떠올리기 보다는 공무원을 떠올리게 되었다. 


공무원은 왜 복지부동할까.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실행하는 적극적 행동이다. 나른한 행동이 아니다. 업무를 했을때 결과가 어떻게 평가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먼저 움직이다간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방향과 성과가 명확하다면 복지부동하라고 지시를 해도 담당 공무원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홍보한다. 그래서 그건 논할 거리도 못된다. 복지부동한다는 건 방향과 성과가 예측이 되지 않거나, 실패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뛰쳐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개시되면 중점분야에 대한 드라이브를 건다. 제2건국, 창의혁신, 규제개혁, 창조, 적극행정 다양한 추진방향이 제시된다. 의사결정권자는 오랜 관료의 경험에서 추진방향대로 추진하더라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안다. 공은 나누어가지지만, 책임은 오롯이 혼자 져야하는 것도 잘 안다. 여론이나 정책결정권자가 싸늘히 식었을 때,  '적극행정'이었다는 항변은 허망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어디에 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직관적으로 안다. 누구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적극행정이 행정의 추진중점이다. 적극행정을 추구하고, 소극행정을 배격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뉴스에는 여전히 복지부동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적극행정을 소극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언가. 적극행정이 전술적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극행정 추진분야는 법규나 관례가 없고, 오히려 충돌되는 규정이나 매뉴얼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여파를 예측할 수가 없다. 책임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적극행정은 부서별로 결정하지 못하고 적극행정위원회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적극행정위원회를 통해서 의사결정하는가. 부서별로 '적극행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면해주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왜 적극행정위원회까지 오는가. 누구도 유권해석으로 명확히 판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정부부처는 적극행정을 적극적으로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고민고민 끝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복지부동이 왜 아트(Art)인지.





https://blog.naver.com/pyowa/22219298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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