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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an 01. 2024

죽음이 걸려 있는 순간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https://m.blog.naver.com/pyowa/223309034810



총은 화약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첫 발은 사람이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밀어 총구에 넣어줘야 한다. 탄창만 꼽아선 방아쇠를 당겨도 발사되지 않는다.


'노리쇠 후퇴고정!' 인솔조장이 명령했다. '탄알일발 장전!' 다시 명령했다. 부대원 모두 '철커덕 철커덕' 소리를 내며 실탄 한 발을 총구 약실에 넣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실탄이 발사된다. 나도 권총에 한 발을 장전했다. 권총을 방탄복 권총지갑에 꼽고 방탄헬멧을 고쳐 메었다. 이라크부대 위병소에는 출동을 앞둔 차량 서 너대가 늘어서 있었고, 앞 뒤에는 중무장한 장갑차가 대열을 호위했다.


시내는 거의 무정부상태였다. 군벌마다 개인 경호원들이 장전된 총을 들고 뒤를 따라다녔고, 건물 앞에서는 늙은 아저씨들이 소총 한 자루씩 들고 앉아 졸고 있었다. 오발이라도 총소리가 난다면, 누군가 맞는다면, 피아가 없이 총격이 일어날 태세였다. 그들에겐 일상으로 보이는 총잡이의 거리를 나도 무덤덤한 척 걸었다.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썼으니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이고, 얼굴에 맞으면 운명이 그러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일상화된 시간에선 죽음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침 작전회의마다, 어제 어디에서 누가 몇 명이 총격으로 죽었고, 지뢰로 죽었다. 대응사격과 응징작전으로 적을 또 몇 명 죽였다는 내용뿐이었다. 죽음이 주변에서 어슬렁거렸지만 다가올때까진 다가온 것이 아니니 모두 일상을 살았다.



군대 낙하는 0.01%의 확률로 사망자가 나온다. 초보 강하자 100명 중의 한 명은 다리가 부러진다. 낙하산은 2인 1조 같은 것도 없다. 베테랑이나 초보자나 혼자 뛰어야 한다. 낙하산을 메고 군용기 문 앞에 서면 누구나 삶을 생각한다. 밤에 뛰면 하늘이 오히려 밝고 땅은 어둠뿐이다. 0.01% 확률에 걸리면 운명이니 받아들어야 하고, 다리가 부러지면 그건 내 잘못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었다. 모두 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걸려 있는 순간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피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누구나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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