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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l 28. 2021

'엄벌하라'는 말

공무원생태학(fiction)

최전방 GP에는 처음 와본다. 적들이 우리를 내려다 볼 정도로 가까운 최전방 GP다. 수사관이 내려오더니 앞장선다. 언덕쪽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초소를 가르킨다.


‘저깁니다. 수류탄을 터뜨렸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폴리스라인이 초소를 빙둘러있었고 안은 훤했다. 까맣게 변한 핏자국이 딱정이처럼 초소 여기저기에 딱딱히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청년 한 명이 딱딱히 누워 있었다. 표정은 없었다. 아래에선 군용짚차에서 막 내린 유족들의 울음이 들린다. 어머니 아버지는 차마 올라오지 않으셨다. 작은 아버지가 현장까지 와 보시더니 눈을 가리고 바로 내려가셨다. 


돌아오며 삶과 죽음에 대해, 사건과 대책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더니 이도저도 아닌 생각이 되어갔다. 그러나 저러나 국방부는 또 엄정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할수는 없는 것이니까. 사무실에 도착하니 역시 기강확립 공문이 도착해 있었다. 뭐라고 뭐라고 써 있지만 '엄벌하겠다'는 말이다. 


'엄벌하라'

아주 강력한 공격법이면서 단단한 방어법이다. 엄벌하는 것만큼 간명한 게 있을까. 사건해결의 틀은 그대로 놓고, 처벌 수위만 높이면 된다. 고민이 필요없다. 오히려 권위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위반자는 더 세게 처벌받을까봐 가만히 있을 것이고, 여론은 잘했다고 박수를 칠 것이다. 그동안 선처해서 사건이 발생했으니, 담당자의 여리고 약한 마음이 문제가 될지언정 스스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담당자가 이러한 좋은 방책을 모를 리 없다. 보검이 있다면 어떠한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듯이, '엄벌하라'는 방책은 모든 사건에 언제나 안전하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방책이다.


뉴스 사이로 국방부 대변인이 보인다. 앞뒤 내용은 편집되었는지 '엄벌하겠으며, 재발방지를 위해 매뉴얼을 만들겠다. 수시로 교육하여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만 들린다. 표정은 비장했다. 어느 사건에도 쓸수 있는 '곳에따라 때때로 비 또는 눈이 오겠습니다'라는 일기예보를 보는 것 같다. 정부는 징계양정기준을 높이고, 국회는 새로운 죄명을 만들고,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할 도리를 다 했다며 스스로 뿌듯해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은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없어지는가. 그 옛날 노예로 보내고, 손발을 자르고, 인두로 표식을 해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몰라서 죄를 저지르는 사람보다,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그럴 생각할 여지도 없이 범죄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형벌까지 생각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게 무슨 대책이란 말인가.


며칠 뒤에 나는 부검에 가야한다. 아마도 망자의 작은 아버지를 다시 뵙게 될 것이다. 나를 부여잡고 '왜 죽었냐고', '살려내라고' 하소연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https://blog.naver.com/pyowa/22243965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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