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무, 태민, 여자친구 외 9곡
AB6IX - SALUTE
몬스타엑스 - Love Killa
마마무 - AYA
박지훈 - GOTCHA
시크릿넘버 - Got That Boom
트레저 - 음
여자친구 - MAGO
태민 - 이데아
하성운 - 그 섬
2020년 가장 인상적인 연작 프로젝트인 태민의 정규 3집 [Never Gonna Dance Again]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데아'는 최고의 피날레로 손색이 없다. 벌스에서는 가벼운 질감의 퓨처 신스로 스타일리시하게 무드를 쌓아 올리다 후렴에서 갑작스레 무거운 베이스와 긴박한 퍼커션이 거칠게 파고 들어오는 반전을 선사한 후, 강렬한 현악기가 위태롭게 교차하며 떨어지는 카타르시스가 범상치 않다. 현실의 자신과 이상 세계인 이데아를 대비시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밝은 벌스와 고혹적인 후렴은 선명하게 대비되며 음악 속 태민의 뛰어난 카리스마를 부각시킨다. 'Killing me softly'라는 짧은 보컬 샘플만으로도 곡의 무드를 단번에 휘어잡는 보아(BoA)의 압도적인 음색은 화룡점정. 대서사시의 최종장이니만큼 앨범 수록곡 역시 웅장한 분위기를 가진 양질의 곡들로 가득한데, 그럼에도 역시 가장 빛나는 것은 타이틀곡 '이데아'다. 수많은 보이그룹들이 현란한 사운드를 동원해 인상을 남기려 애를 쓰지만, 태민은 후렴에서 현악기의 줄을 네 번 긋는 것만으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이것이 태민이 흔한 아이돌들과 궤를 달리하는 이유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1위를 기록한 강다니엘과 다를 바 없이, 2위 박지훈 역시 솔로 데뷔 이후 활동만 왕성할 뿐 명확한 음악적 방향성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곡 역시 그렇다. 미국 래퍼 카디 비(Cardi B)의 히트곡 'I Like It'을 빼닮은 라틴풍 힙합 트랙 'GOTCHA'는 곡 자체의 완성도는 준수하나 박지훈에게 맞는 옷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성 아이돌 래퍼들의 인상이 스쳐 지나가는 애매한 래핑이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글로벌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신인 걸그룹 시크릿넘버(SECRET NUMBER)의 두 번째 싱글 'Got That Boom'은 터져야 할 때 제대로 터져 주는 브라스 드랍이 인상적인 트랙이다. 벌스에서 감각적인 베이스와 다채로운 퍼커션, 유머러스한 브라스를 사용해 텐션을 휘어잡은 뒤 파괴력이 확실한 후렴으로 마무리하는 솜씨는 신인 그룹치고 상당히 노련하다. 허나 기껏 올려 놓은 텐션을 4마디만에 다시 루즈한 리프레인으로 떨어트리는 허술한 구성은 아쉽다.
요즘 대다수의 보이그룹이 그렇지만, YG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 트레저(TREASURE)는 EDM에 대한 일관된 지향을 보여주는 팀이다. 그러나 전작 'BOY'와 '사랑해'는 이것이 YG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나온 곡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조악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한 우물만 파는 건 좋지만, 우물에서 물이 안 나오는데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세 번째 싱글 '음 (MMM)' 역시 마찬가지다. 전작과는 달리 미니멀하고 메탈릭한 사운드의 모양새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YG가 사활을 걸어야 할 신인 보이그룹의 타이틀곡이라기에는 기준치 미달이다. 회사 측에서 트레저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나 걱정될 정도로 트레저의 디스코그래피는 위태위태하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작 'Apple'에서 놀랍도록 세련된 음악을 선보인 여자친구 역시 '레트로 열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복고풍 신스와 디스코 리듬을 전면에 내세운 'MAGO'는 좋게 말하면 장르에 충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러운 곡이다. 80~90년대의 전형적인 한국 가요의 코드 진행을 쏙 빼닮은 멜로디는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나 어디까지나 그것뿐, 옛 가요의 작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음악적 의의를 창출하는 차별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레트로 콘셉트를 택한 의미가 현저히 바래질 뿐이다.
펑키한 모습을 보여 준 전작 'Get Ready'에서 웃음기를 싹 빼고 돌아왔다. 처연한 피아노 선율이 깔리는 도입부를 들으면 발라드인가 싶더니, 이윽고 둔탁한 신스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며 댄스곡으로 전환된다. 기본적인 보컬의 실력이 받쳐 주니 매끈한 사운드가 빛을 발한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장르의 요구 조건을 적절하게 충족시키고 하성운이라는 보컬을 성공적으로 조명하는 '그 섬'의 프로듀싱은 높게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