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네 마리를 모두 먹은 밤

전봇대가 슬펐던 날

by 김필영




경찰공무원 준비생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입은 티셔츠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보통 남자든 여자든 여름에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블라우스나 셔츠, 원피스 이런 옷을 입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나도 그때 흰색 카라티, 그리고 회색 티셔츠와 검은색 운동할 때 입는 기능성 티셔츠 이렇게 세 개를 번갈아 가며 입었다. 그래서 그들이 입은 티셔츠를 유심히 보고는 했다. 그것 말고는 뭐 딱히 볼 것이 없기도 했고 티셔츠나 바지를 입은 모양을 보면 사람마다 묘하게 형태가 달라지는 그 티셔츠가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티셔츠를 입은 형태가 또 누군가와 비슷하고. 이런 것들을 찾아내는 게 재밌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발견한 티셔츠의 형태가 몇 년뒤 우연히 어디선가 음식물을 버리러 가다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다가 마주친 누군가와 또 같을 때 나 혼자 화들짝 놀라고는 한다.



'아니. 저 사람은 저 티셔츠 형태도 그렇고 입었을 때 옆면이 남는 정도라던지 그런 게 그때 걔랑 똑같네. 그때 닭발을 먹었는데 저 사람도 닭발을 좋아할까.'





인생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나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산다.

아이들을 그네를 밀어주며 생각한다.

'아니. 그때 왜 닭발을 먹으며 왜 술을 마시지 않았지?'



티셔츠에서 시작된 상상은 점점 형태를 갖춰 나간다. 바지는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였는데 종아리 부분에 자크가 있었고 함께 걷다가 마주친 편의점에 붙은 맥주 4캔에 만원이라는 글자를 기억해 낸다. 그때의 날씨와 하늘의 노스르름한 정도를 기억해낸다.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는 것과 직접 활자로 옮기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옮기는 순간 글에는 박자가 생긴다. 리듬이 생기고 살아서 숨 쉰다. 그래서 내가 좋은 것을 아무리 생각한다고한들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순간순간 어깨를 내리고 글에서 나의 어떤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뭔가가 쌓인다. 그리고 그게 쌓일수록 글이 써지지 않는다. 보내줘야 한다. 흘려보내야 새로운 것이 온다

예를 들면

그 티셔츠를 보내주는 방법은 그 티셔츠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아, 나는 역시 이 정도밖에 못쓰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흘려보내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면서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게 되었다. 흘려보내기 전에 다각도로 생각하고. 성찰하고 좋은 것들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잘 흘러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휴대폰 가게를 할 때는 혼자서 노래방이고 디브이디 방이고 자주 갔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가끔 애인과 다툰 날이면 나는 버스비로 무언가를 사서 먹으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보통 편의점에 파는 빨대가 있는 커피였지만 때때로 붕어빵 같은 것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면 4마리 모두 다 먹은 뒤였다.

붕어빵 네 마리를 모두 먹은 밤.

남자 친구와 싸웠고, 아무것도 없었던 그런 날들. 손에 꾸깃꾸깃 붕어빵이 담겨있던 그 종이봉투를 들고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는 커다란 전봇대가 있었다. 그걸 보면 왠지 슬펐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것들이 내게 다가오면 그런 것들에 대해 피하지 않고 열심히 떠올리고 그림을 그리고 쓴다. 이제 와서 그걸 떠올려서 뭐해. 그만 생각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는다. 멋대로 생각하게끔 내버려 둔다.





내가 겪은 일들. 접한 일들. 그것들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러니 그 정도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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