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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 쓰면 천만 원을 준다고?

by 김필영



그때 내가 주로 했던 일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과 여러 모임에 다니는 것. 여러 모임이라고 해도 독서모임 한 두 개가 전부였지만 그 시절 내게는 갓난아이와 두 돌도 안된 첫째를 키우고 있었기에 그 정도도 사실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라서 그렇게 조금씩 글을 쓰고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주위에 알리고 다녔다.

그렇게 1년쯤 보냈을까. 나는 차곡차곡 글을 써서, 을유문화사와 첫 책을 계약하게 되었다. 계약을 1월에 하고 내 책은 11월에 나왔으니 10개월 정도 편집자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책 원고를 다듬고 있었다.

첫 책이 나오기 전, 여름쯤의 일이다.






독서모임의 지인 중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다.

“필영 씨, 혹시 자서전 쓸 수 있어요?”

“대필요? 아 글쎄요. 써 본 적은 없는데요.

“금액은 섭섭하지 않게 줄 거예요.”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자서전을 의뢰한 분과 그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 그리고 나 그리고 내게 일을 소개해준 분 이렇게 넷이서 만났다. 그분은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자신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했다. 단, 시기가 11월까지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출간기념회라도 열어서 지인들을 초대할 거라고 했다. 나는 애초에 말씀하신 금액으로는 어렵다며, 1000만 원 정도는 주셔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집필한 책도 없는 내게 의뢰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생각 외로 금액은 맞춰줄 테니 다음 주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난 아무런 레퍼런스가 없는데? 난 작가도 아닌데?'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 커피숍 내내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입이 넓적한 나무를 쳐다보았다. 천만 원이 생기는 걸까! 내게 글로!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을 했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푹 덮어쓰고는 나오지 않았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오랫동안 뜸을 들이다가 그가 말했다.

“그건

여보의 이름을 빛내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 책을 내는 마지막 퇴고에 집중하는 시기에 과연 천만 원을 더 버는 게 맞는 걸까. 그때 당시에는 사실은 지금도 천만 원이 큰돈이지만, 글쓰기로 아예 버는 돈이 없을 때였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이고 메인에 올라간 기록 몇 번있는 게 다인 내게 그런 제안은 정말 큰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했는데 어쩐지 남편의 뒷모습이, 김 빠진 콜라 같은 그 뒷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고민하다가 그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래도 이 일은 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곧 나올 내 책에 집중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이 7월 31일이었다. 다음 날부터 휴가였다.

그때 나는, 최선인지 잘못인지 모를 선택을 하고, 세바시강연에 넣을 원고를 썼다. 당시 투고로 뽑는 인생질문의 한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박 2일 동안 호텔방에서 홀로 세바시 강연 원고를 작성해서 투고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원고가 뽑혀서 나는 졸지에 세바시강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만 원 대신에 내 첫 책 무심한 듯 씩씩하게 가 출간되었다.

아마, 천만 원을 받고 대필을 했더라도 책은 나왔겠지만, 어쩌면 한번 시작한 대필을 계속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살고 있을지도.

돌이켜보면 세바시 강연으로 인해 천만 원은 넘게 강연과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대필을 했더라면 돈은 더 벌었을 수도 있지만 내 이름을 지키기는 조금 더 힘들었지 않을까.




나는 사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좀 부족하고, 강사, 작가, 뭐 하나 그렇게 뚜렷하게 내 모양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안정적이지도 않다. 어딘가 대도 조금씩 모자란 천처럼 그냥 커튼이나 방석 같은 게 되지 못한 천조각이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제안도 아직도 혹하게 된다. 나를 커튼으로 만들어준대! 아니 식탁보가 될 수 있다던데!


그럼에도 나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마다 남편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어떤 일은 내 이름을 빛내는 일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천천히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 이름을 빛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을 한다. 조선일보에서 칼럼을 쓸 때, 내 이름으로 된 강의를 원하는 장소에서 할 때, 내 이야기를 하는 강연을 할 때 나는 나답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분명히 시간은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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