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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02. 2020

아기매트만큼의 세계

아이들이 잠들고 거실로 다시 나왔다. 보통 밤에는 일기를 쓰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일기조차 써지지 않았다. 아기매트 위에서 자세를 잡고 스쿼트를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몇 년간 안 썼던 몸을 쓰려고 하니 자세가 엉거주춤하게 되었다. 한 번은 좀 대충하고 한 번은 신경 써서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스무 개 정도는 금방 했다. 오십 개부터는, '내 허벅지가 여기였네.' '엉덩이가 여기 있었어.' 동작을 할 때마다 알되되는 기분이 들었다. 구십 개를 넘어가니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후들거리면 후들거린 채로 백개를 완성했다. 이게 뭐라고 땀이 흘렀다. 끝나고 나서 매트 끝을 잡고 다리를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는 복근 운동을 했다. 끝나고 난 뒤 예전 요가 수업 때 배웠던 고양이 자세를 했다. 방귀가 뽕 하고 나왔다. 이어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다섯 개에서 여섯 개 넘어가는 순간 무너졌다. 이어서 1분 플랭크를 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하니 티셔츠 속 자연스레 튀어나온 뱃살이 보였다. 그래도 보는 사람도 없으니. 베란다 창문으로 건너편 집에 티브이 화면이 보였다. 저 집은 항상 골프채널이 켜져 있다.     



아기매트 위에서라면 이렇게 나도 매일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운동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운동이 어떤 운동인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떨림, 그리고 땀이 이렇게 흐르면 된 것 아닐까. 복잡했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졸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작년에 처음 제의를 받았던 출판도 길어지고 있다. 어제부터 어린이집은 또다시 문을 닫았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걸 생각하느니 조는 편이 낫다.  요즘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필라테스를 할까, 헬스장에 등록해서 피티를 받아볼까, 발레를 배워볼까 운동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지만 엉망으로 아기 물건이 깔린 매트 위에서 발가락이라도 움직는편이 낫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어서 정리가 안된 글밖에 안 써지지만 써서 올리는 편이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누군가의 자살 뉴스를 인터넷으로 접하고 나면 꽤 오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먹고사는 문제도 아닌데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대단한 장비도 없이 아기매트 위에서 스쿼트를 하고, 졸면서 엉뚱한 글이나 쓰면서도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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