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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04. 2020

필영처럼 사네

역시나 이렇게 살고 있네


  민정이는 뭐든지 잘했다. 나와 어쩌다 보니 초 중고를 같이 다녔다. 초등학교 때 한 번은 옆 반이었다. 화장실을 가다가 복도에서 민정이를 마주치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영애를 닮은 단아한 얼굴이었다. 당연히 남자한테 인기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공부도 잘하고 소풍을 갈 때면 무대에 올라가서 걸그룹 춤도 췄는데 춤도 잘 추었다. 민정이는 단소도 잘 불고 발표도 잘했다. 특히나 그런 것들을 할 때 이마가 참 예뻤다.     


 고등학교 때에는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 나는 수업시간에는 수업과 관련 없는 책을 읽고 쉬는 시간에는 줄넘기를 넘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는 커피믹스를 한 번에 4통씩 타서 마시고는 했다. 키는 작은데 몸무게가 60킬로가 넘어가려는 참이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나빴던 시력이 고등학생이 되자 더 나빠져서 안경을 아무리 압축해도 안경만 쓰면 눈이 콩알만 해졌다.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나에게 민정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필영아. 우리 야자 마치고 남아서 같이 공부 더할래?”


 민정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동안 자정까지 자습실에 남아있다가 집에 갔다. 나는 줄넘기를 했다가 영어단어를 외웠다가 이것저것을 했지만 그런 것보다 집에 갈 때 학교 체육복을 입고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들으며 걸었던 것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몽쉘을 한 상자씩 먹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고는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민정이는 4년제를 갔고 나는 2년제를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는 1년에 한 번 정도 마주쳤다. 처음 마주쳤을 때 그녀는 분홍색 난방과 청바지 차림이었다. 고등학교 때 보다 더 살이 빠진 모습으로 웃으면서 나한테 인사를 했다.


 “어 필영이다. 안녕.”


같이 버스정류장에 앉았지만 크게 할 말도 없어서 버스 도착시각이 적힌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그 의자에 같이 앉아있는 게 좋았다. 그다음 마주쳤을 땐 민정이는 구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민정이를 마주쳤을 땐 우리는 23살이었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어 필영아.”


 정장 차림에 높은 구두를 신고 있던 민정이가 다가왔다. 한눈에 면접을 보고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휴대폰 가게 사장이었는데 가슴골이 훤히 다 보이면서도 그 자리에 구슬이 박혀있는 희한한 쫄티를 입고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친구와 같이 원룸을 구해서 밤마다 술을 먹고 분기별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안 튼튼하면서도 어둡게 살고 있었던 나였지만 아무튼 그래도 민정이가 반가웠다.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식탁에 앉아서 엉망이 된 집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민정이가 생각났다.      

 ‘민정이라면 아마 밥을 먹을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설거지통에 있으면 설거지부터 할 텐데. 그리고는 새벽 2시간 자기 시간을 따로 만들어 글을 쓰겠지.’     

 





나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 민정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자정에 몽쉘 통통을 먹어치우던 나는 역시 아이가 낮잠을 자자마자 노트북 전원부터 켰다.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던 책들은 내 인생에서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지금 쓰는 글쓰기는 무슨 도움이 될까. 아마 별 도움 안 되겠지만 나는 역시나 이렇게 살고 있다. 민정이 같은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아주 당연하게 하고 싶은 걸 먼저 하며 대책없이 필영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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